[어린이가 안전한 나라로]<上>벗어나기 힘든 친권의 덫
“아이가 상처받을 것 같아요. 내가 키울게요.”
두 달 전만 해도 장기보호시설에 아이를 맡기자는 제안에 동의했던 그였다. 아이의 종아리와 허벅지에 남아 있던 붉고 선명한 회초리 자국이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아버지의 말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계모가 학대를 일삼는다고 해도 친아버지가 거부한다면 자녀 격리를 강하게 주장하기란 무리이기 때문이다.
원영이가 2014년 7월 격리 조치만 제대로 받았다면 지긋지긋한 학대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친아버지의 강력한 주장에 떠밀려 학대를 막지 못한 결과 아이의 죽음을 불러왔다.
○ “내 아이 내가 키운다는데 무슨 말이 많아”
최근 드러난 아동학대 가해자의 대다수는 부모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4년까지 학대행위자가 부모인 경우는 매년 80%를 넘고 있다. 한 번 학대했던 부모가 자녀를 또다시 학대하는 일도 빈번하다. 2014년 기관 및 경찰에 접수된 재학대 사례 1027건 중 896건(87.2%)이 부모의 학대였다. 아이를 보낼 곳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가정으로 돌려보내다 보니 다시금 학대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친권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 사회 풍토와 무관치 않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학대 피해를 입은 어린이에게 피해아동보호명령을 내린 205건 가운데 학대 부모의 친권 행사를 제한하거나 정지한 경우는 43건에 그쳤다.
○ “남의 집안일 참견 마”
정부는 아동복지법을 개정하면서 친권상실선고를 청구하는 요청권자를 아동보호전문기관장, 복지시설관장, 학교장까지로 확대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부모임을 주장하며 학대 아동의 격리를 막는 행태가 여전하다고 하소연한다.
서울의 한 지역아동센터 직원은 지난해 말 한 초등학생의 몸에서 멍을 발견하고 학생의 아버지를 고발했다가 조사를 받은 아버지에게 “당신이 뭔데 남의 집 일에 참견을 하느냐”는 폭언을 들었다.
전문가들은 문제가 있는 부모로부터 아이를 격리할 시스템을 확보해야 학대를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학대 아동을 강제로라도 가능한 한 빨리 부모에게서 떼어놓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