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창으로 전통미를 살린 한 기업의 대표 회의실. 한옥문화원 제공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건물의 인상은 창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만 한옥에서는 더욱 그렇다. 창이 벽체의 큰 부분을 차지할뿐더러 뽀얀 한지와 살대가 이루는 조형성이 뚜렷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한옥 살대의 짜임은 띠살, 용자살, 완자살, 아자살, 숫대살 등을 기본으로 하여 수백 가지에 이를 정도로 다양하게 변주된다. 짜임의 선택은 집의 규모, 용도, 위치에 따라 결정했으니, 빛을 많이 받고자 하는 곳은 쓸 용(用)자처럼 단순한 짜임을 간격 넓게 설치했고, 띠살문을 보편적이고 수수하게 가장 많이 사용했다. 우아하고 화려한 장식 효과를 원할 때는 완자살이나 아자살 등이 많이 쓰였다.
이렇게 한옥의 조형미를 보여주는 대표주자로 발전한 살대이지만, 원래의 용도는 창호지를 붙이기 위한 지지대의 역할에서 출발했다고 보아야 한다. 살대에 의지해 한지를 붙인 창은, 비로소 바람을 막고 직사광선을 걸러 방안을 아늑한 공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해맑은 백색의 한지는 살대무늬를 돋보이게 하여 창을 아름답게 완성한다.
한지의 주재료인 닥나무 껍질은 목재펄프에 비해 섬유 길이가 30배가 넘을 정도로 길고 고르므로 섬유의 결합이 강하고 조밀하며 조직의 강도가 뛰어나다. 긴 섬유가 서로 얽히면서 형성되는 공기구멍이 방안의 습기를 조절하고 실내외의 압력차에 따라 환기량을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직사광선을 걸러 주어 부드러운 실내 분위기를 연출하며 소음을 흡수하여 소리가 부드럽게 들리도록 하니, 한지는 실로 사람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귀한 재료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좋은 재료이지만, 근대 이후 유리가 건축 재료로 널리 보급되면서 한지 창은 상대적으로 사용이 위축돼 왔다. 한지가 소음을 완전히 차단하지 못하고, 쉽게 찢어지며, 재질이 불투명하여 조망을 가리는 데다 천연 재료를 수작업으로 완성하는 복잡한 제조 과정으로 인해 가격이 비싸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역설적으로 유리가 가질 수 없는 한지의 탁월한 장점과 한지와 살대가 이루는 조형성을 인식하고, 이를 현대 공간에 도입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어 관심이 간다.
경기 성남시 분당에 사는 원희 씨는 방 이중창의 내창을 한지 창으로 바꿨다. 유리 외창은 열고 내부의 한지 창을 닫는 방법으로 외부의 먼지나 소음, 직사광선을 막고 자연스러운 환기를 하기 위해서다. 집에서 종일 시험공부를 하는 터라, 단열은 잘되고 환기는 잘되지 않는 아파트가 답답했기 때문이다.
어느 기업에서는 대표 집무실과 회의실에 커튼을 없애고 한지 창을 설치했으며, 이것만으로 외국 손님들로부터 정체성 있는 품격 높은 기업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다.
이처럼 현대의 유리 낀 새시 창과 전통의 한지 바른 창은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니라 상호보완하며 공존할 수 있다. 그리고 한지의 성능과 살대가 이루는 조형미를 공간의 성격에 맞게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공간을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다.
속도와 효율 추구로 획일화되고 밋밋해진 우리 공간이다. 한지 창의 장점을 적극 살리면서 현대의 공간을 풍부하게 하는 유연한 디자인으로 공간의 다양성을 확장할 때다. 더구나 한국인은 한지 창에서 많은 향수를 느끼지 않던가.
장명희 한옥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