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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SNS 민심]북핵여론, 기술관심은 있지만 시야가 좁아

입력 | 2016-02-26 03:00:00


김도훈 아르스프락시아 대표

숨 가쁘고도 막막한 몇 주가 지나갔다. 북한 얘기다.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후 한반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고조됐고, 2월 10일 대한민국 정부는 개성공단 조업 정지를 결정했다. 같은 날 북한은 개성공단의 폐쇄와 남측 자산의 동결을 통보하는 것으로 맞섰다. 언제나 그렇듯, 소셜미디어에서도 금번의 사태에 대해 갑론을박이 오간다. 필자가 관심 있는 건, 온라인에서 어떤 의견이 얼마나 더 많으냐가 아니다. 그보단 우리가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얼마나 지혜로울 수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개성공단 철수 시기인 2월 10일부터 21일까지, 국내에선 비교적 정제된 생각들이 긴 글로 표현되는 블로그를 분석의 대상으로 골랐다. 다른 한편으로 해외에선 작금의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래서 미국의 유력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매체인 레딧(reddit)의 북한 관련 데이터도 모아 분석했다. 레딧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서버를 둔 소셜 뉴스 네트워킹 서비스로, 2015년 현재 한 달 5억4000만 명 이상의 방문자 수를 기록했다.

먼저 총 3616건의 북한 관련 국내 블로그들을 의미연결망(semantic network)으로 분석해 보면, 그림에서와 같이 ‘한반도’(오른쪽 하단) 안보와 ‘북한’(오른쪽 상단) 도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로 공히 ‘중국’(왼쪽)을 지목하는 핵심 프레임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핵심 주체인 ‘중국’의 연관어로 ‘한국’, ‘러시아’에 더해 ‘제재’, ‘사드’, ‘배치’가 추출되었다. 즉, 이 키워드들이 북한 제재 등 중국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변수로 인식됨을 알 수 있다.

레딧에서는 1051건의 북한 관련 뉴스와 개인 포스팅이 수집되었다. 그 결과 가장 핵심이 되는 관심 주제어는 ‘무기(weapon)’였다. 북한(North Korea)이 촉발한 핵무기 프로그램과 시스템이 ‘세계(world)’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특히 흥미로운 건, 영어권 사용자들이 레딧에서 인식하고 있는 중국의 위치다. 뜨거운 감자인 ‘무기’의 배후에는 북한도 있지만, 중국도 있다. 한국의 블로그에선 중국을 북한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주체로 생각하지만, 서방 SNS에선 중국을 북한 무기 프로그램의 배후에 위치한 영향력자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레딧에선 이렇게 북한으로 인한 군비 경쟁이, 김정은과 세계 리더들 간의 ‘게임’을 관전하는 창이 된다.

한반도와 정치 사회적 운명을 같이하는 대다수 한국민은, 북한과의 심각한 대치 상황을 단순히 열강 간의 파워 게임으로 ‘관전’할 수만은 없다. 자연히 우리가 스스로의 운명을 위해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역량에는 국력도 있지만, 집단지능(collective intelligence)도 있다. 통상 마케팅 비즈니스에서 데이터사이언스를 활용할 땐 유저들의 전형적인 페르소나(persona·주체의 사회적 성격)를 알아내고자 한다. SNS를 통해 봤을 때, 우리는 어떤 페르소나와 집단지능을 보유하고 있을까.

데이터 분석 과정에서 필자가 떠올린 한국 블로거들의 국제정치 페르소나는 ‘두 평 남짓한 고시원 방안에서 국제정치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공대 출신 학생’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사드의 기술적 효용성 등, 각론에 해당하는 이슈들에 대해서는 해박한 편이다(공대 학생). 국제정치를 현실주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탁상공론이 될 수도 있지만 논리적인 해결 방안도 도출해 낸다(공무원 수험생). 그러나 전 세계의 움직임을 총괄해서 읽어 내는 시야는 매우 제한적이다(좁은 고시원).

집단지능에 대해 총평하자면, 힘의 논리에 입각한 현실주의만 알 뿐 인간과 사회를 읽는 구성주의적 사고의 프레임이 부재했다. 북한을 거론하지만, 정작 북한의 사회도, 지배구조도, 인간도 깊이 알지 못한다. 소련 체제의 몰락을 예견했던 엘렌 카레르 당코스나, 에마뉘엘 토드 같은 인류학적 통찰을 한국에서 기대하긴 어려울 듯하다. SNS를 쓰지 않는, 극소수의 엘리트는 통찰력이 있지 않겠느냐고? 블로그에조차 반영되지 않을 정도로 담론화되지 않는다면, 설혹 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여론을 하나로 모으기 전에, 스마트한 담론과 지혜부터 모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도훈 아르스프락시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