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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한기흥]정치인의 명함

입력 | 2016-02-11 03:00:00


‘大韓民國(대한민국) 金冠植(김관식).’ 미당 서정주의 아래 동서인 시인 김관식이 1960년 7월 민의원 선거에서 거물 정치인 장면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 만든 소박한 종이 명함이다. 무소속으로 나온 그는 혈혈단신 달랑 명함 하나로 승부해 100표도 못 얻고 낙선했다. 그는 정치를 할 생각이 없었다. 잘못된 정치를 파천황(破天荒)의 자세로 꾸짖으려고 뛰어들었을 뿐이다. 육당 최남선이 수제자로 받아들인 천재로 어릴 때부터 한학과 서예를 익혔다. 36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고은은 그를 ‘단군 이래 한국의 최고 기인’이라 칭했다.

▷일본에서 정치인 관료 등이 명함을 사용한 것은 메이지 시대부터. 메이지 41년(1908년)엔 전쟁으로 돈을 번 사람이 다이아몬드를 넣은 명함을 만든 기록도 있다. 한 달 생활비가 1엔이던 시절, 그 명함 한 장이 3500엔이었다. 장식용인 듯한데 한 장 받으면 횡재했을 것이다. 선거 출마자도 이름을 알리는 수단으로 명함의 효용에 눈을 떴다. 명함을 이용한 선거운동은 1900년대 초만 해도 풍자화의 소재였다.

▷일본의 이와야 마쓰헤이는 담배회사인 덴구야를 창업해 청일전쟁(1894∼1895) 때 일본군에 담배를 납품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일왕이 하사하는 ‘은사의 담배’가 여기서 비롯됐다. 일본 최고의 부호가 된 그는 “부(富)의 다음은 명예를!”이라며 정치권을 넘봤다. 1903년 3월 중의원 총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을 때 순금이 들어간 명함을 유권자들에게 돌렸다. 비판도 있었지만 순금 명함이 먹혔든지 그는 최고 득표로 당선됐다.

▷북한 미사일 때문에 어수선했던 설 연휴에도 4월 총선 출마자들은 유권자들에게 명함을 내밀며 지지를 호소했다. 한결같이 참일꾼이 되겠다고 다짐하지만 공허하게 들린다. 금배지를 다는 순간 표변해 유권자를 배신하는 의원들을 무수히 봐왔다. 이들이 건네주는 명함을 간직하는 것은 고사하고 앞뒷면을 꼼꼼하게 읽어보는 사람도 많지 않다. 지하철역 입구 등에서 명함이 굴러다니는 것을 보면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