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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의 법과 사람]인파이터 박근혜의 ‘정치 경호실장’

입력 | 2016-02-06 03:00:00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나는 바보가 됐다. “30년 기자 한 것 맞느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삼고초란(三顧草蘭)’ 때문이다. 아직도 나는 현기환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무엄하긴 하지만 혼자 결정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만난 사람들은 열이면 열 모두 “제1야당 대표가 보낸 대통령 생일축하 난을 대통령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물리쳤을 리 없다”고 했다. 야당이 공개하자 대통령을 위해 덮어썼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동아일보는 3일자 사설에서 ‘사실이면 현 수석을 경질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확인을 위해 그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밤늦게 응답 전화가 왔다. “(내가) 직접 독자적으로 판단해 그랬다”고 했다. 물론 그 말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난처해진 대통령을 위해 제대로 된 참모라면 불 속이라도 뛰어들어야 할 판이다.

그러나 나도 감이 있다. 누구보다 직관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한다. 오랜 전화취재 경험도 ‘현 수석이 거짓말하고 있지 않다’고 속삭였다. 나는 나의 명징한 직관을 믿는다. 문제는 축하 난 거부가 대통령의 뜻이 아니라면 더 심각하다는 점이다. 박근혜 청와대의 증상이 생각보다 더 위중해 보이기 때문이다.

작년 추석 연휴 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사고’를 쳤을 때다. 오픈프라이머리에 집착하던 김 대표가 안심번호인가를 갖고 부산에서 야당 문재인 대표와 전격 합의를 했다. 방미 중이던 대통령은 귀국 후 보고를 받고 불같이 화를 냈다. 궁지에 몰린 김 대표가 “현 수석을 만나 이해를 구했다”고 털어놨다.

그때 대통령은 현 수석에게 “만나서 한 이야기를 다 공개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와 여당 대표 간에 전운이 감도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대통령이 열 번 넘게 재촉 전화를 했다. 그는 “청와대와 여당 대표가 충돌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라고 거듭 얘기해 대통령의 진노를 간신히 진화했다.

정무수석은 대통령의 참모 중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직언할 줄 알아야 한다. 현 수석은 그럴 만한 담력과 내공도 갖췄다. 그런 현 수석마저 요즘 제대로 직언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난초사건과 국무회의 때 박원순과의 언쟁을 보면 그는 국회와 소통하는 정무수석이 아니라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정치 경호실장’ 같다.

박 대통령은 몸을 던지는 현 수석을 신뢰한다. 그는 대통령에게 호되게 깨지는 수석 중 한 명이다. 묘하게도 대통령은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수석들은 자주 찾지도 않고 깨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러셨어요” “잘하셨네요”라고 미소로 대한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다르다. 현 수석은 어떤 때는 15분 동안 깨진 일도 있다.

난초사건을 보면 현 수석은 정말 간도 크다. 그렇다면 대통령에게 직언도 좀 하라. ‘무대’(무성 대장)와의 정면 대결을 피하도록 한 것은 잘한 일이다. 대통령의 판단이 지나쳐 보일 때면 서슴지 말고 직언하라. 대통령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져도 멈춰선 안 된다. 건방지다는 이유로 잘리면 오히려 영광이다 .

임기가 2년 남은 대통령은 당 태종의 치적을 다룬 정관정요(貞觀政要)를 탐독한 바 있다. 아버지의 18년 통치와 박 대통령의 5년은 한 세트로 평가받을 것이다. 전무후무할 부녀 대통령의 23년 통치를 후세의 사가들이 어떻게 평가할까. 당 태종처럼 황제가 불같이 화를 내도 태연하게 직언한 간의대부(諫議大夫) 위징(魏徵) 같은 신하를 두시라. 그래야 ‘정관의 치(貞觀之治)’처럼 성공한다. 그것이 아버지의 평가를 깎아먹지 않는 길이다.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