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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신민기]중국으로 간 농부

입력 | 2016-02-02 03:00:00


신민기 경제부 기자

‘1-9-5.’ 중국 기업이 한국 반도체 연구 인력을 빼내 갈 때 1년 연봉의 9배를 5년간 보장해 준다는 말이다. 경력이 짧은 경우에는 ‘1-5-3’이 되기도 한다. 파격적인 대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최고급 주택과 차는 물론이고 자녀 교육을 위해 비싼 국제학교 등록금도 지원해준다. 중국은 인재 영입도 ‘대륙의 스케일’을 자랑한다.

지난달 말 산업통상자원부의 투자설명회 취재차 중국을 찾았다. 경제성장률이 6%대로 내려앉아 경착륙을 걱정하지만, 베이징과 상하이의 발전 속도는 우리에겐 빛의 속도처럼 빠르게만 보였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 발전의 힘은 ‘사람’에 있었다. 14억 인구도 든든하지만, 능력 있는 인재라면 어떻게든 확보하려는 노력이 눈에 띄었다.

중국인 사이에서 한국 화장품의 인기가 높아 중국의 유명 화장품 회사의 연구개발(R&D) 인력 중에 반드시 한국인이 포함돼 있다. 많은 곳은 한국 연구원을 15명이나 거느리고 있다. 퇴직 후 갈 곳이 없어진 한국 연구 인력을 중국 화장품 회사는 3년간 3억 원을 주고 모셔 간다. 출장길에 만난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 화장품 업계에서 퇴직하면 100% 중국에 온다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업종도 가리지 않는다. 한국이 중국보다 앞서 있는 산업이라면 어디든 환영이다. 문화콘텐츠 분야에서는 한국 PD와 작가들을 모셔 가기에 바쁘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나는 가수다’ 등 MBC 간판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한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도 중국에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한국 홍삼 제품 인기가 높아지자, 한 중국 회사는 한국 고려삼 종자와 흙을 가져간 것도 모자라 아예 인삼을 재배하는 농부까지 스카우트해 갔다. 이 밖에 식품, 미용, 성형, 건설, 주방용품, 고기잡이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적잖은 한국 전문가들이 중국의 경쟁 업체나 한국 기업 모방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막강한 자본력과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기업들이 국내 우수 인력을 확보하고 기술력을 갖추면 한국 기업들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반도체 분야의 경우 중국의 적극적인 인재 영입으로 기술 격차가 2008년 3.5년에서 2014년에는 1.8년으로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을 정도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한국과 중국 간 교역과 투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도 중국의 자본력을 발판 삼아 국내 경기를 일으키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한중 간 교역 물길을 따라 우수한 국내 인재들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경쟁력을 인정해 주고 높은 연봉까지 준다면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해외로 나가는 것을 말리기는 쉽지 않다. 기자도 연봉의 9배를 준다는 제안을 받는다면 뿌리칠 자신이 없다. 결국 고급 기술자를 인정해 주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 주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장기적으로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중국 기업에 인력을 빌려 주고 지분을 일부 받는 방식도 고려해 볼 만하다. 정부와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중국으로의 인력 유출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때다.

신민기 경제부 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