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제재 풀린 이란 현장을 가다]
쇼핑객들로 붐비는 시장 21일(현지 시간) 낮 이란 수도 테헤란 시내 중심가의 레자 시장 부근은 쇼핑을 하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서방의 대이란 경제 제재 해제 이후 이란 국민들은 앞으로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테헤란=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의류 상인 하산 씨(45)는 “경제 제재가 해소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소비와 투자 심리에는 큰 영향을 끼친다”며 “그동안 돈을 꽤나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젠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분야에 투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은 “앞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란을 많이 찾게 되면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중국과 이란이 합작한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운영하는 알리 소브하니 씨(36)는 이날 기자와 만나 “중국과 한국은 서방의 경제 제재 당시에도 건설, 전자업체 등이 사무실을 유지하면서 이란과 경제 교류를 해왔다”며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이 이란의 인프라 건설에 많은 투자를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광고 로드중
아직 이란에서는 미국, 유럽 등 서방 국가의 다국적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 그동안 서방 국가에서 금융 제재를 받아왔기 때문에 비자, 마스터 등의 국제 신용카드는 현지에서 통용되지 않았다. 현지에서 물건을 구입하려면 미국 달러, 유로화 등을 가져가 현지 은행, 환전소 등에서 이란 리알화로 바꿔야 한다.
유가 하락의 여파로 리알화는 요동치고 있다. 지난해 7월 핵협상이 타결됐을 때만 해도 달러당 3만3000리알 안팎이었던 리알화의 가치는 21일 현재 달러당 3만6000리알로 떨어졌다. 물가도 핵협상 타결 이후 경제 제재가 풀리면서 상당히 떨어졌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의 경제 제재가 가해진 2013년의 경우 물가상승률이 40%를 넘기도 했지만 지금은 질레트 면도날 1상자의 가격은 4년 전과 비교할 때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랜드바자르의 한 수공예품 가게 판매원은 “이란인들은 우리 제품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관광객들은 다르다. 그들은 우리 제품에 관심이 많다. 경제 제재가 풀렸으니 가게 매출이 크게 늘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의 국내 소비시장은 양극화 현상이 매우 뚜렷하다. 국민 대부분은 소득의 70%를 식비와 주거 임차료에 사용한다. 소비품은 대체로 저가인 중국산과 대만산, 터키산을 선호한다. 그러나 중산층 이상은 LG, 애플 등 고급 전자제품이나 승용차를 구입하려고 한다. 테헤란 거리에는 낡은 중고 자동차들이 매연을 뿜고 다녔으나 한국의 현대자동차도 많이 보였다. 부유층은 서방 국가의 상류층 이상이다. 명품 브랜드와 최고급 제품을 선호한다. 테헤란 거리에서도 벤츠, BMW 등의 자동차가 간혹 눈에 띈다.
그 대신 대다수 제품의 공급량이 크게 부족한 탓에 시장 자체는 공급자가 좌우하는 구조다. 현지 기업들은 물량을 상당 부분 확보해도 한꺼번에 유통하기보다 시장 현황을 보면서 유통 물량과 가격을 조절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국산품을 장려하기 위해 생산량이 적어도 자국 제품이 있으면 높은 관세, 수입제한 조치 등을 실시하고 있다.
광고 로드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명품 가게는 사람들로 붐볐다. 대부분은 서구식 옷차림을 한 여성으로 히잡(무슬림 여성들이 머리를 가리려고 쓰는 스카프)을 머리 뒷부분에 살짝 걸친 채 스마트폰을 들고 쇼핑을 하고 있었다. 1979년 2월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전만 해도 이란 여성들은 서구식 옷차림을 하고 히잡을 쓰지 않았다. 패션의 자유를 누려서 가슴과 허벅지의 일부를 드러낸 옷을 입기도 했다. 과거 이란 왕정은 여성을 덴마크 대사로 임명하기도 했다.
에르위나 알라스 씨(27·여)는 “경제 제재가 풀리면서 이란 경제가 상당 부분 회복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여성에게도 과거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팔라디움몰 밖으로 나가자 고가 시계인 오메가의 광고 간판도 보였다. 인근에선 명품 전문 쇼핑몰이 2곳이나 건물을 짓고 있었다. 이 가운데 한 쇼핑몰에선 완공 전임에도 불구하고 지하에서 식료품 판매점이 운영되고 있었다. 가게 직원은 “유럽 고급 식재료와 가공식품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테헤란=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