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40년 맞아 새 시집 ‘오른손이 아픈 날’ 펴낸 김광규 시인
김광규 시인은 난해하지 않은 일상의 언어로 쓰인 자신의 시에 대해 “삶과 현실의 구체적 체험을 평이한 일상어로 형상화해서 독자의 보편적 공감을 유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경주 대릉원, 불탑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 돌사자의 머리는 물개처럼 둥그렇게 변했고, 발톱도 닳아 버렸다. 기개 있던 사자의 모습이 이제는 귀여워 보인다. 한눈에 읽히는 이 시편에는, 그러나 1300년이라는 시간이 담겨 있다.
김광규 시인(75)이 새 시집 ‘오른손이 아픈 날’(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그는 지난해 등단 40년을 맞았다. 독자에게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아니다 그렇지 않다’ 등의 시편으로 사랑받아 온 그이다. “지난 40년간 800여 편의 시를 발표했는데 어느 시를 들춰봐도 그 작품을 썼던 과거의 현실과 오늘의 현재가 서로 조응해서 새롭게 수용된다”고 그는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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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집에는 스마트폰에 대한 상념이 적잖다. ‘가을 소녀’에서 시인은 150년 전 서양화가가 그린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소녀와 오늘날 스마트폰을 보는 젊은이를 겹쳐놓으면서, 이 문명의 이기에 대한 비판 의식을 내비친다. 시인 자신은 “파지의 이면에 연필이나 볼펜으로 시를 쓰고 퇴고를 거듭한 뒤에야 컴퓨터에 옮겨서 송고할 때만 이메일을 사용한다”. 아직도 종이에 인쇄된 시만 읽고 있다는 그는 “시는 천천히 읽으면서 그 소리와 뜻을 음미해야 하는 텍스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상생활 속에서 길어 올린 시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쓰인 김광규 시인의 작품들에 대해 평론가들은 ‘일상 시’라는 이름을 붙였다. 단숨에 쓰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보통 사람들이 읽어서 이해될 만큼 퇴고를 거듭한다”고 시인은 털어놨다. 시는 되도록 짧아야 하고 구체적 형상을 보여줘야 한다는 신념도 갖고 있다. 실제로 그가 지금껏 써온 시들은 대부분 시집 기준 두 쪽을 넘지 않는다.
“나는 짧은 시를 쓰지만 우리의 삶은 장강처럼 길게 흘러간다.”
시인은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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