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초등생’ 사건]
아들을 엎드리게 한 뒤 마치 축구하듯 강하게 발로 차기도 했다. 어린 아들은 머리와 몸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과 벽에 부딪혔다. 눕혀 놓고 발바닥을 때리기도 했다. 끔찍한 폭행은 2시간 넘게 이어졌다. 아버지는 쓰러진 채 정신을 잃은 아들을 방 안에 두고 또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들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 아빠는 때리고 엄마는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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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폭행이 있었던 바로 그날 현장에는 직장에서 돌아온 한 씨도 있었다. 그는 최 군이 남편으로부터 맞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봤다. 평소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체벌해야 한다’는 남편의 자녀관에 한 씨 역시 별로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씨도 최 군에게 손찌검을 했다. 하지만 한 씨도 이날 남편의 ‘훈육’이 심했다고 느꼈는지 “그만하자”고 말렸다. 그러나 최 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2시간 동안 폭행을 이어갔고 쓰러진 아들을 뒤로한 채 부부는 소주를 나눠 마셨다.
다음 날 한 씨는 남편과 아들이 안방에서 자는 모습을 확인한 뒤 출근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들의 상태는 ‘평소’와 다름없어 보였다. 폭행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얼마 전 화장실에서 남편에게 맞아 실신했다가 깨어난 적도 있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새벽에 잠들었다가 이날 오후 5시경 깨어난 최 씨는 아들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최 군은 거실 컴퓨터 책상 의자에 앉은 채 옆으로 머리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몸을 꼬집어봤다. 가느다랗게 숨을 쉬고 있었다. 서둘러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이 이상하다. 빨리 집으로 오라”는 전화를 받은 한 씨는 조퇴하고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때는 최 군이 숨을 거둔 뒤였다. 당황한 최 씨는 아내에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친정에 가 있으라”고 권유했고 한 씨는 딸과 함께 인근 친정을 찾았다.
○ 시신 방에 놓고 치킨 배달시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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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주로 최 씨가 시신을 훼손했고 한 씨는 장갑을 가져다주고 옆에서 마스크를 씌워주거나 쓰레기봉투를 잡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후 부부는 시신 일부가 담긴 쓰레기봉투를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공용 화장실에 버렸다. 남은 시신은 검정 비닐봉지에 넣어 집 냉장고 냉동실에 보관했다. 부부는 집 안에 가득 찬 냄새를 감추기 위해 청국장까지 끓였다. 그리고 다음 날 한 씨는 태연히 인근 병원을 찾아 감기약을 처방받았다.
그동안 부부는 “아들이 목욕탕에서 넘어져 다쳤고 1개월 뒤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진술의 신빙성이 약하다고 보고 진위를 가리는 데 수사력을 집중해 한 씨가 시체 훼손에 가담한 사실을 밝혀냈다. 18, 19일 이틀 동안 한 씨의 친부모와 자매 등을 불러 조사한 결과 “당시 한 씨가 딸과 함께 친정에 잠시 들렀다 되돌아갔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9일 한 씨가 집 근처에서 배달시킨 치킨을 신용카드로 결제한 것도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최 군 사망의 원인이 아버지의 폭행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경찰은 부부에게 살인죄를 적용하는 방안에 무게를 두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에서도 최 군의 머리와 얼굴 등 여러 곳에서 외부 충격으로 인한 멍과 상처가 발견됐다.
○ 만취 폭행도 거짓말 가능성 높아
경찰은 술에 취해 폭행했다는 최 씨의 진술도 믿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경찰은 처벌 수위를 낮추기 위해 술을 핑계 삼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흉악범들의 경우 결정적인 거짓말이 들통나면 무거운 처벌을 피하려고 술이나 약물 핑계를 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 씨는 남편이 아들을 폭행할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는지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폭행 과정에서 도구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조사 중이다. 한 씨는 경찰에서 “남편이 파리채 등으로 자주 아들을 때렸다”고 진술했다. 또 부부가 인터넷에서 시신 훼손 방법을 검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집에서 압수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분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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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경찰은 특별한 이유 없이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교육적 방임’ 학부모를 21일부터 학교 전담 경찰관을 투입해 조사한다. 장기결석 아동 가운데 교육부가 특이점이 없어 등교를 권고한 84명이 조사 대상이다.
부천=김호경 whalefisher@donga.com·유원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