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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김재영]여전한 마부의 논리

입력 | 2016-01-15 03:00:00


김재영 경제부 기자

영국 일본에서 자동차를 타면 오른쪽에 운전석이 있는 것이 영 낯설다. 오른손잡이가 많아 기어를 조작하려면 운전석이 왼쪽에 있는 게 훨씬 편한데 왜 그렇게 배치했을까. 여러 설이 있지만 19세기 ‘마부의 관습’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설득력 있다. 마차를 몰 때 오른손으로 채찍을 휘두르려면 마부가 오른쪽에 앉는 것이 편하다는 것이다.

마부들의 관습에서 기상천외한 법도 만들어졌다. 역사상 대표적인 낡은 규제로 꼽히는 영국의 ‘적기조례(Red Flag Act)’다. 1865년에 만들어진 이 법은 자동차를 운행하려면 최소 3명(운전자, 석탄을 공급하는 화부, 조수)이 있어야 하며, 조수는 낮에는 붉은 깃발, 밤에는 붉은 등을 가지고 자동차 전방 50m에서 걸어가며 위험을 알리도록 했다. 마치 사극에서 “쉬∼, 물렀거라”를 외치며 지나가는 가마 행렬 같다.

조례는 시속 30km 이상으로 달릴 수 있는 자동차의 발도 묶어놓았다. 최고 속도를 시내에서 시속 2마일(약 3.2km), 교외에서 시속 4마일(약 6.4km)로 제한한 것이다. 자동차 사고 예방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위기감을 느낀 마차업계의 필사적 로비도 영향을 미쳤다.

지금 보면 우스꽝스러운 규제이지만 요즘도 ‘마부의 목소리’는 여전히 횡행한다. 차량을 가진 개인(운전사)과 차량이 필요한 개인(고객)을 스마트폰 앱 하나로 연결한 우버는 택시업계의 반발 속에 국내에서 불법으로 찍혀 사실상 퇴출된 상태다. ‘우버택시’의 버스 버전으로 주목받고 있는 ‘콜버스’도 불법 논란에 휘말렸다. 소셜커머스업체 쿠팡이 선보인 ‘로켓배송’도 택배업계로부터 “사실상 유상 운송행위”라며 고발당해 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나친 규제가 혁신을 제한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국토교통부는 뒤늦게 콜버스와 온라인 자동차 경매 등 새로운 교통 서비스가 연착륙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나섰다. 강호인 국토부 장관은 12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국토교통 미래산업 조찬간담회에서 “행정이 사회 혁신의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며 “행정의 속도와 사회 혁신의 속도 차를 줄여 가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기존 법을 새로운 서비스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권해석을 하겠다는 식의 접근에 그친다면 답이 나올 수 없다. 택시 승차 거부 등 불편한 경험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틈새 서비스는 끊임없이 나올 텐데 그때마다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따질 순 없는 노릇이다. 버스 택시 화물 등의 영역별 칸막이를 포함해 제도적 틀 자체를 획기적으로 바꿀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기존 업체들도 살아남기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 머지않아 자율주행차가 등장하면 택시라는 형태가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모빌리티(mobility) 기업’을 선언하면서 운송 서비스 등으로 영역을 확대할 기세다. 유통기업과 물류기업의 경계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적기조례는 만들어진 지 30여 년 뒤인 1896년 폐지됐다. 영국 자동차가 가마의 속도로 움직이는 동안 독일 미국 등 후발국의 자동차 산업은 거침없이 앞서 나가 쉽게 따라잡을 수 없게 됐다.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마차 산업도, 마부라는 직업도 시장에서 거의 사라진 뒤였다.

김재영 경제부 기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