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E! 2015… 지면에 소개 못한 아쉬운 책
《 눈 맞춤할 시간이 많지 않다. 동아일보 ‘책의 향기’ 팀에 오는 책은 한 주 평균 500여 권. 팀원들은 각자 제목과 저자를 살피고, 내용을 들춰 책을 추린다. 다시 팀원들이 참여하는 회의에서 난상토론을 거쳐 지면에 소개되는 책은 20권 남짓. 1년 동안 치열한 과정을 거치고도 지면에 올리지 못하거나 소홀히 다룬 책이 있다. 책의 향기 팀이 놓쳤지만 아깝다고 생각한 책 10권을 소개한다. 》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김시덕 지음·메디치미디어)=임진왜란부터 태평양전쟁까지 동아시아 500년 역사를 해양과 대륙 세력의 충돌이라는 관점으로 분석한다. 임진왜란으로 유라시아 동부 지역의 질서가 바뀐다. 한반도를 거쳐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일본의 침략 때문에 대륙 세력도 한반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오늘날 한국의 외교 전략 수립에 참고할 만한 책이다.
●공부의 배신(윌리엄 데레저위츠·다른)=미국 예일대 교수인 저자가 학생들의 입학 과정을 살피며 느꼈던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저자가 가르친 학생들은 수재들이지만 창조적인 사고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어떤 목적으로 공부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저자는 이런 학생들을 ‘똑똑한 양떼’에 비유한다. 학부모와 학교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느끼게 한다.
●이토 히로부미와 대한제국(한상일·까치)=이토가 자혜로운 통치자였다는 일본 일부 역사가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최고의 권력에 오른 이토는 대한제국의 문명화와 근대화를 통치와 지배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대한제국을 통치하는 것은 오히려 독립의 기틀을 마련해 주는 것이며, 동아시아의 번영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의 허구성을 파헤친다.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조지프 나이 지음·프리뷰)=최근 중국의 급부상으로 세계 유일한 패권 국가였던 미국의 지위가 흔들린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하버드대 석좌교수이며 빌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입안한 저자는 미국 쇠퇴론을 강하게 반박한다. 저자는 중국이 경제력은 급성장했지만, 군사력과 소프트파워 등 여러 면에서 아직 미국을 따라올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에로스의 종말(한병철·문학과지성사)=2012년 베스트셀러 ‘피로사회’를 통해 현대인들이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는 성과주의를 비판했던 저자의 신작이다. 저자는 사랑을 위해서는 타자의 발견을 위해 자아를 파괴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데, 안락함과 나르시시즘 외에는 관심이 없는 현대인들은 에로스적 경험이 있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사랑도 사치가 된 사회를 분석했다.
●하버드학생들은 더 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파리드 자카리아 지음·사회평론)=제목만 보면 하버드대 학생들이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와 달리 교양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이다. 한국과 같이 영미권에서도 인문 교양이 퇴조하는 세태를 비판한다. 저자는 기술 대혁명이 일어나는 오늘날 오히려 교양 교육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반농반X의 삶(시오미 나오키 지음·더숲)=책 제목은 농업을 통해 생필품만을 얻는 ‘작은 생활’을 유지하는 동시에, 예술과 지역 활동 등 하고 싶은 일(X)을 하는 삶의 방식을 나타낸다. 농사를 지어 식량을 자급해 대량생산·운송·소비 같은 낭비적인 현대사회의 삶을 멀리하는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귀농인구가 늘어가는 요즘 귀농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최 근 교보문고가 서울 종로구 광화문점에 설치한 뉴질랜드산 카우리 소나무로 만든 대형 테이블에서 고객들이 책에 빠져 있다. 독서삼매경이란 마음과 눈과 입을 함께 모아 책에 빠져든다는 의미다. 동아일보가 놓친 아까운 책들과 함께 삼매경에 빠져 보면 어떨까. 동아일보DB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