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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경영의 지혜]혁신이 싹 틀 토양 없다면… ‘제2 애플’은 없다

입력 | 2015-12-24 03:00:00


제이컵 G 포스터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 등은 1938년부터 2008년까지 출판된 수백만 건의 생의학 분야 논문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 혁신 전략을 채택한 연구는 매우 희귀할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그 비중이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왜 과학자들은 혁신을 추구하는 연구에 주저하는가.

이에 대해 저자들은 전통적 연구를 조장하는 관습이 지속적으로 제도화돼 왔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우선 연구 재원은 확실성이 높은 전통적 연구에 집중된다. 학술지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전통적 연구를 선호한다. 또 학자들은 기존 지식과 부합하는 논문을 인용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반대로 모험적 연구는 재원을 마련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쉽지 않다. 설사 발표된다 하더라도 다른 학자들에 의해 인용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전통적 연구를 선호하는 관습과 문화가 강화돼 왔다는 것이다.

이 연구가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토머스 쿤이 말했듯이 과학적 지식의 진보는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전통적 연구와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혁신적 연구를 모두 필요로 한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 현상을 탐구하는 사람이 많아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거인’이 있어야 한다.

애석하게도 우리의 과학계, 아니 학교, 기업, 정부 등 모든 영역에서 ‘거인’이 될 수 있는 재목을 발견하고 키우려는 노력이 미흡하다. 단기적 성과가 장기적 잠재력보다 중요하게 여겨지고, 성과를 평가하는 핵심 기준은 질이 아니라 양이다. 위험에 도전하고 실패를 무릅쓰려는 사람은 무능한 사람이나 몽상가로 낙인찍히기 쉽다.

저자들은 혁신적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제도화된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정적 지원 기간을 늘리고, 성과 평가의 기준도 양에서 질로 바꾸자는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어느 기업이나 애플 같은 혁신적 기업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혁신과 탐색을 촉진하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제2의 애플이 되고자 하는 꿈은 단지 요원한 ‘몽상’에 그치고 말 것이다.

정동일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