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FTA-해군기지 대안 없이 반대… 당내서도 “정책 헷갈려”

입력 | 2015-12-15 03:00:00

[안철수 탈당 후폭풍]
[위기의 야당 어디로]<中>정책비전 있나




박근혜 대통령은 8일 국무회의에서 “참여정부도 의료서비스 개방을 추진했는데 이제 와서 야당이 반대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지적했다. 의료서비스 개방이 핵심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처리를 막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말 바꾸기’를 한다며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야당은 박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지 6시간이 지난 오후 5시 반이 돼서야 “참여정부의 의료서비스시장 개방과 박근혜 정부의 것은 본질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야권의 한 인사는 “노무현 정부 시절 열린우리당(현 새정치연합)은 여당이었음에도 대통령의 의료영리화 추진에 반대했다. 지금 와서 말을 바꾼 것이 아니다”라며 “(야당 스스로) 그 역사를 모르니 정부·여당의 ‘말 바꾸기’ 프레임에 자꾸 빠진다”고 안타까워했다. 정책역량이 부족한 제1 야당의 현주소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 정책 무기력증… “그때그때 달라요”

새정치연합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연패한 요인은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집권 당시 표방한 정책을 야당이 되자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는 비판은 뼈아프다. 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수권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낳게 하는 대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14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미 FTA에는 미국의 자동차산업 관련 수정 요구가 있었고, 해군기지도 다른 요소가 더해지는 등 사정 변경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그렇다 해도 노무현 정부가 왜 그런 정책을 추진했는지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대응한 측면은 있다”며 “그러다 보니 반대를 위한 반대, 말 바꾸기의 낙인이 제대로 찍혔다”고 말했다.

이처럼 부족한 정책역량은 19대 국회 들어 새정치연합이 주도적으로 정책을 이끌어 본 적이 없다는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나마 18대 국회 때인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이슈를 들고 나와 판을 흔든 것이 유일한 기억이다. 정부·여당이 들고 나온 정책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기에 급급했던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2012년 대선도 야당은 ‘전매특허’ 격인 경제민주화 논쟁에 대해 새누리당에 선수를 빼앗긴 측면이 있다. 김종인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영입하면서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한 여당의 전략에 밀린 것. 내년도 예산 협상과정에서도 누리과정 예산 문제가 2년 연속 제기됐지만 당 차원의 대책은 전무했다. 정책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방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 초선 의원은 “10년간의 집권 경험과 축적된 정책 지식이 당에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 같다”고 탄식했다. 이렇게 된 이유로 지적되는 것이 공천 실패다. 각 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정책 전문가에 대한 과감한 수혈에 나서지 못한 채 이른바 ‘정체성’에 입각한 폐쇄적인 인재충원 구조가 낳은 한계라는 비판이 나온다.

○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또 하나의 문제는 새정치연합이 추구하는 정책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게 당 안팎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문재인 대표가 꼭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정말 하려고 했던 게 무엇인지 누가 알고 있는가”라고 비꼬듯 반문했다. 물론 문 대표는 소득주도 성장을, 안 의원은 공정성장을 주장했다. 하지만 립서비스가 전부였다. 그 목표를 현실화하려는 노력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초선의 두 지도자가 ‘혁신 경쟁’을 벌였다고 하지만 국민의 눈높이에서는 차기 총선과 대선을 앞둔 권력다툼으로 비쳤을 뿐이다. 그 속에서 당의 정책비전은 실종됐다.

전문가들은 야당이 정책의제를 놓고 치열하게 노선논쟁을 벌여 당의 정책방향을 결정하는 전당대회를 연 것이 언제였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한다. 1990년대 초반 영국 노동당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노조를 설득해 이뤄낸 ‘제3의 길’이나 2010년 독일 사민당이 ‘새로운 좌파를 찾는다’며 노선 전환을 한 함부르크 당대회 같은 일은 요원할 뿐이다.

박용진 정책위 부의장은 “타협과 양보의 정치가 가능하려면 각 정당이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해야 한다”며 “정당의 고집스러운 정책비전 제시가 결국은 한 사회의 발전을 만드는 건전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