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들은 이렇게 담근 김치를 각각 분가한 자녀들에게도 보내줌으로써 겨우내 온 집안 식구 수십 명이 같은 맛을 즐기게 한다. 엄마의 손맛을 기억하는 네 딸들이 모여 그 맛을 공유하며 또한 자녀들에게 그 맛을 대물림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 며느리, 조카들에게 보낼 김치 택배를 포장하던 시골집의 주인은 “바쁜 도시생활에 일없이 시골에 놀러와 사나흘씩 묵으라면 그게 쉽겠어요? 김장을 담근다는 핑계가 있으니 네 자매가 모두 모여지지요”라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자리는 김장을 넘어서 함께 나이 먹어가는 자매들의 정겨운 송년잔치 같았다.
요즘은 도처에서 먹는 이야기들이다. 방송사마다 앞다투어 요리 프로그램을 내보내 무려 20개에 이른다는 ‘먹방’. 방송만 틀면 ‘대한민국은 요리 중’이다. 전 국민의 인사말이 “진지 잡수셨습니까?”였던 배고픈 시절도 아니고 먹고살 만해진 지금 새삼스럽게 ‘먹는 귀신’이 씌었나 싶다. 그렇지만 먹방이 유행인 것은 오히려 먹을 게 넘쳐서일 것이다. 음식이 귀하던 시대에는 찬밥 더운밥 가릴 여유가 없었지만 이젠 더운밥만, 그것도 기왕이면 폼 나게 먹겠다는 뜻일 테니까 말이다.
배추 오백 포기가 여러 사람의 능숙한 손놀림으로 순식간에 먹음직스러운 김치가 되는 마술을 지켜보면서 음식은 나눌 때 가장 맛있고, 먹는 즐거움도 크지만 먹이는 기쁨도 그에 못지않다는 것, 그리고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보태면 한 사람의 배고픔을 덜 수 있는 십시일반(十匙一飯)에 대해서 생각했다. 지금은 마침 자선의 달 12월이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