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 사이에 요리 솜씨 좋은 남자가 배우잣감으로 인기다. 요리를 할 줄 모른다면, 최소한 “밥 달라”는 소리 안 하는 남자가 좋다고 한다.
TV만 봐도 이런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채널을 돌리다 어김없이 만나는 ‘먹방’의 포인트는 ‘남자가 요리하고 여성은 맛보는’ 역할 분담이다. 소개되는 맛집의 셰프도 대개 남성이고, 요리를 가르치는 스승이나 배우는 제자들 모두가 남성이다.
반대로 음식 만드는 여성은 TV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중이다. TV는 대중에게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그 영향력은 또한 대중의 욕망을 화면에서 실현해 주는 것으로부터 비롯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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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기 싫은 것은 젊은 여성에게만 국한된 사정은 아니다. 밥에 관한 한, 여성은 꽤 오래전부터 갈림길에 서 있었다. 한편으론 손수 지은 밥을 식구에게 먹이고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밥으로 대표되는 집안일에서 벗어나 나만의 무언가를 통해 존재 의미를 찾고 싶어 했다.
이제는 ‘나만의 무언가’는 찾아내지 못했더라도 요리는 하지 않는 쪽이 대세다. 아내에게 아침 얻어먹고 출근하는 남자가 20여 년 전부터 줄어들더니 마침내 갈라파고스 코끼리거북이처럼 멸종 직전이다.
가족 모두가 아침은 굶고, 점심은 사 먹고, 저녁은 각자 다른 시간에 들어와 즉석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다. 여유로운 휴일에도 밥을 해 먹기보다는 외식을 선택하며, 그것도 아니면 배달이다. 우리가 문화사의 전환기 한가운데 서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아내의 요리 파업으로 인해 ‘어머니 밥상’을 그리워하는 이가 늘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우리 세대가 마지막일 수 있다. 아들 세대에는 요리 솜씨가 결혼의 필수 스펙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언젠가는 결혼한 딸이 ‘아빠 밥상’을 그리워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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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내가 집밥 먹방을 재미있게 본다고 해서 ‘저렇게 만들어 주려나’ 하는 기대를 한다면 오산이다. 아내 또한 TV 속의 남자들과 남편을 번갈아 보며 생각할 것이다. ‘눈치 없기는…. 저런 흉내라도 내보면 얼마나 좋아?’
한상복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