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일·경제부
‘홍문표 의원 대표발의, 무역이득공유제 기금법 통과’란 제목의 e메일에는 “산업계의 반발로 4년째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던 ‘FTA 무역이득공유제’가 드디어 빛을 보게 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 홍 의원은 “부족하지만 FTA로 인한 농어업 지원 토대가 마련된 만큼 지속적으로 논의해 좀 더 많은 기금이 확보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중 FTA로 혜택을 보는 산업 부문의 이윤 일부를 강제로 떼어내 피해를 보는 농어촌에 지원하자는 ‘무역이득공유제’가 여론의 비판을 받자 국회와 정부는 1조 원 규모의 ‘농어촌상생기금’ 조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국회와 정부가 강조하는 무역이득공유제와 상생기금의 가장 큰 차이는 ‘자발성’이다. 하지만 연간 1000억 원의 목표치에 크게 밑돌 경우 정부가 지금처럼 자발성 원칙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기부금 액수가 미달할 때 정부의 예산을 지원할 가능성에 대해 정규돈 기획재정부 대외경제국장은 “민간 기금인 만큼 정부의 재정 지원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국회와 정부에 말을 아끼고 있는 기업들도 이 대목에서는 “결국 준조세로서 기업에 직간접적인 압박이 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기업들은 정부가 말하는 자발성이 ‘알아서 잘하라’는 으름장이란 걸 너무 잘 안다. 특히 기업들이 기부금을 내면 동반성장지수에 가점을 줘 1년간 공정거래위원회의 하도급 실태조사를 면제받도록 한 탓에 정부가 ‘면죄부’를 파는 것이란 지적까지 나온다.
‘한중 FTA 연내 발효’란 압박에 쫓긴 정부와 여당이 야당과 합의한 상생기금에는 ‘연간 1000억 원씩 10년간 1조 원’이란 구체적 목표액과 시한이 조건으로 붙어 있다. 정치권이 ‘상생협력이다’ ‘민생을 고리로 한 대타협이다’ 등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산업계와 국민이 이를 변형된 무역이득공유제에 불과하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손영일·경제부 scud2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