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영 사회부 차장
다음 3건은 올해 7월과 2010년에 나온 판결이다.
무직자 D 씨는 빈집을 골라 옷가지 반찬 속옷 등 생필품을 18차례 훔쳤다. 돈으로 따져 61만 원 상당이었다. E 씨도 빈집에 들어가 1만3200원이 든 저금통을 훔쳤고 F 씨는 잠기지 않은 빈 트럭에 들어가 운전자 옷 주머니에서 5만 원을 훔쳐 달아났다. 생계비를 구할 생각이었다고 진술했다.
죄를 지은 건 맞지만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해 봐주겠다는 취지의 집행유예 기준을 찾아봤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홈페이지에 어려운 법률용어로 길게 설명돼 있었다. 맨 끝에 아래와 같은 답이 있었다.
‘(중략) 당해 사건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된다면 법관은 위 요소의 존재를 이유로 집행유예 기준을 벗어난 판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판사의 재량이 집행유예의 핵심 기준이라는 말로 들린다. 범죄 뒤에 가려져 있던 딱한 사정을 감안해 순간 실수를 저지른 사람을 온전하게 사회로 돌려보낸 판결도 숱하게 많은 줄 안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에서 ‘형벌은 공평하고 정의롭다’는 말과 ‘가진 자는 다 빠져나간다’는 말 중 어느 쪽이 공감을 얻고 있을까. 죄를 지었지만 ‘예외적으로’ 형의 집행을 유예해 준다는 집행유예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오히려 특별한 사정을 봐주고 국가가 챙겨 줘야 할 사람은 D 씨 등이 아닐까. 셋 모두 무직이라는 절박한 사정에 놓여 있었지만 법원은 이 점을 오히려 교도소행의 이유로 보는 듯하다. 그 대신 누가 봐도 공분할 범죄를 저질렀어도 직업이 있다거나 돈으로 합의했거나 ‘진심으로 반성했다’고 판단하면 집으로 보내주고 있다. 재판부는 A, B, C 씨가 사회로 돌아가도 괜찮다고 봤는지 모르겠지만 이 셋을 자기 집에 들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싶다.
굳이 이 제도를 유지하려거든 직업 좋고 돈 있는 사람에겐 절대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판결 즈음에 휠체어 타는 피고인은 병원 치료가 우선이니 집행유예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완치 후 정상 생활이 가능해야 집유 대상이라고 하면 그런 꼴불견은 당장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그 대신 무직이라 변호사 선임이나 합의도 못 하는 피고인에게 직업교육 수강 서약과 피해 변제 상세 계획을 받은 뒤 우선적으로 집행유예를 적용해 준다면 공감을 얻을 듯하다. 이런 대안이 불합리해 보인다면 집행유예 제도에 사형을 선고한 다음 재력과 직업을 따지지 말고 죄지은 자 곧장 교도소로 보내라.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