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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프랑스와 벨기에서 본 이슬람의 두 얼굴

입력 | 2015-11-18 03:00:00

범죄 온상화하는 브뤼셀, 이슬람화가 원인이라고?
파리 교외 생드니에서 이슬람계로부터 받은 위협, 이슬람계의 도움으로 모면
테러는 문명간 충돌 아니라 문명과 야만의 충돌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벨기에 브뤼셀 기차역은 유럽에서 절도범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2011년 브뤼셀에서 프랑스 파리행 열차를 탔다가 선반에 올려놓은 손가방을 잃어버렸다. 파리에 도착해서야 분실 사실을 알았다. 누군가 기차가 출발하기 전 자기 물건을 올려놓는 척하면서 갖고 내린 것이다.

손가방에 둔 휴대전화도 함께 잃어버렸다. 휴대전화에는 잠금 코드를 걸어놓지 않았다. 귀국해서 통화 기록을 조회해보니 알제리로 전화한 기록이 많이 나와 있었다. 절도범은 알제리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브뤼셀은 유럽에서 이슬람계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다.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이 도시가 2030년경이면 이슬람계 인구의 비율이 유럽 최초로 절반을 넘는 도시가 된다고 한다. 브뤼셀 인근에서도 이슬람계가 가장 많은 도시가 몰렌베이크다. 몰렌베이크가 파리 테러범들의 근거지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파리 교외의 생드니에 비춰 보면 그곳이 어떤 곳일지 대략 짐작이 간다.

2009년 파리 특파원 시절 생드니에 갔다가 이슬람계 청년들로부터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생드니도 이슬람계가 많고 우범지대로 악명 높다. 내 카메라가 우연히 불량스러워 보이는 청년들을 향했는데 날이 저물어 플래시가 자동으로 터졌다. 그쪽에서 나를 쳐다보는 낌새가 이상했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서둘러 빠져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30초쯤 걸어가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 내 손의 카메라를 확 잡아채는 게 느껴졌다. 카메라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꽉 잡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등 뒤에서 내 발을 걸어 쓰러뜨리고 내 눈에 휴대용 스프레이 최루가스를 뿌렸다. 안경을 끼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한동안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공포감이 밀려왔다. 주변에 있던 남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바로 앞이 중국인 상점이니 들어가 도움을 청하라고 말했다. 나를 중국인으로 여긴 모양이었다.

상점으로 들어가 중국인 주인에게 사정을 해서 경찰을 불러 달라고 했다. 주인은 한참을 망설이다 전화기를 들었다. 그러자 불량배들이 상점으로 들이닥쳐 주인에게 전화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했고 주인은 포기하고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불량배들도 고객들 눈치가 보여서인지 나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내가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는 눈치였다. 도움은 예기치 않은 곳으로부터 왔다. 그 상점은 여성용품을 파는 곳이었다.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이슬람계 여성 2명이 내게 다가와 제안하기를 자신들이 나를 에워싸고 매장을 나가 택시를 태워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차라리 경찰을 불러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들은 “이 구역은 경찰도 잘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라며 달랬다. 서너 명의 다른 여성들도 도와주겠다고 동참했다. 그들 말이 맞았다. 불량배들은 이 여성들을 어떻게 해볼 수 없었던지 나는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파리에서 한 살인자가 피해자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휴대용 스프레이 최루가스를 사용했다는 기사를 봤다. 그런 물건은 범죄자의 세계 속에 있지 않으면 구하기 힘든 것이다. 프랑스나 벨기에는 총기 휴대가 금지된 나라다. 그러나 테러범들은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난사했다. 경찰도 함부로 접근하기 어려운 치안 부재의 게토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나는 이슬람 테러가 발생할 때마다 나를 도와줬던 고마운 젊은 이슬람계 여성들을 떠올린다. 그들도 파리 테러와 같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테러에 분노할 것이다. 이슬람국가(IS)의 잔혹한 행태는 인간 심성에 거슬리는 것으로 이슬람 신자라도 구역질 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소수의 폭력주의자들이 휘두르는 전횡에도 신물을 느낀다.

이 싸움을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로 보면 해결책을 찾기 힘들다. 이것은 문명과, 어느 문명에나 남아 있는 야만과의 충돌이다. 서구 문명에서도 지난 세기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야만이 출현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이슬람 문명 역시 그 저류에서 돌출하는 야만을 극복하고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 이슬람 문명이 야만을 이기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우리도 서구인들과 함께 궁리해야 한다. 우리에게도 이슬람 테러가 언제까지나 남의 일로 남아 있을 것 같지 않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