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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가슴 찡한 원숭이 母子 ‘1000년의 사랑’

입력 | 2015-11-18 03:00:00

[이광표 기자의 문화재 이야기]동물모양 청자를 만든 까닭은




① 국보 60호 청자 사자모양뚜껑 향로, 띁 국보 61호 청자 어룡(魚龍)모양 주전자, ② 국보 65호 청자 기린모양뚜껑 향로, ③ 국보 96호 청자 구룡(龜龍)모양 주전자 (이상 고려 12세기).

사자, 기린, 오리, 원숭이 그리고 물고기인지 용인지, 거북인지 용인지 알 듯 모를 듯한 동물들. 고려청자 가운데에는 동물 모습을 형상화한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12세기에 비취색의 청자가 절정에 달했을 때, 이 같은 동물 모양 청자를 많이 만들었지요. 그럼, 고려 사람들은 왜 동물 모양으로 청자를 만들었던 걸까요.

국보 60호 청자 사자모양뚜껑 향로(높이 21.2cm)를 보겠습니다. 이 청자향로는 뚜껑이 사자 모양으로 되어 있어요. 사자는 살짝 입을 벌리고 앉은 채 고개를 들어 먼 곳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부드럽지만 당당해 보이네요. 목 뒤쪽과 엉덩이 부분에는 털을 소용돌이 모양으로 표현했는데, 위로 추켜올려 등에 착 붙인 꼬리가 매우 인상적이네요. 불교에서 사자는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을 지켜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존재입니다. 탑이나 석등에 사자가 종종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국보 65호 청자 기린모양뚜껑 향로(높이 20cm)도 국보 60호와 분위기가 비슷합니다. 여기서 기린은 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목이 긴 동물이 아니랍니다. 동양에서 기린은 상상의 동물로, 예로부터 상서로운 존재로 여겨져 왔어요. 국보 60호, 65호 향로의 경우, 모두 향의 연기는 사자나 기린의 입을 통해 밖으로 내뿜게 됩니다. 무시무시한 사자와 성스러운 기린의 입을 통해 향연(香煙)이 뿜어져 나온다니, 생각만 해도 매력적이지 않나요?

국보 61호 청자 어룡(魚龍)모양 주전자(높이 24.4cm), 국보 96호 청자 구룡(龜龍)모양 주전자(높이 17cm)는 그 모습이 독특합니다. 61호를 보니 머리는 용인데 몸통은 물고기군요. 96호는 몸통은 거북인데 머리는 용에 더 가깝습니다.

여기서 61호를 감상해 보죠. 용머리의 물고기가 몸을 움츠리고 꼬리를 한껏 추켜올린 채 힘찬 비상을 준비하고 있는 듯합니다. 주전자 표면을 보니 몸통 앞쪽엔 갈퀴 모양의 지느러미를, 꼬리 쪽에는 비늘을 표현했어요. 여기에 주전자 뚜껑은 물고기 꼬리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주전자 맨 아래쪽(물고기 몸통의 바닥)은 연꽃잎으로 예쁘게 감싸 올렸고 손잡이는 연꽃 줄기 모양으로 처리했습니다.

용머리를 가진 이런 물고기는 실제로 존재하는 동물이 아니라 고려 도공이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동물입니다. 성스러운 용의 모습, 다산(多産)과 풍요를 상징하는 물고기 모양을 결합한 뒤 여기에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을 넣은 것이지요. 고려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보 270호 청자 모자(母子)원숭이모양 연적(고려 12세기). 새끼를 바라보는 어미 원숭이의 눈길에 사랑이 가득하다. 고려청자 마니아들이 아주 좋아하는 작품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동물 모양을 형상화한 고려청자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은 작품은 국보 270호 청자 모자(母子)원숭이모양 연적(높이 9.8cm)입니다. 연적은 벼루에 먹을 갈 때 쓰는 물을 담아두는 그릇입니다. 이 연적은 어미 원숭이가 새끼 원숭이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에요. 새끼를 바라보는 어미 원숭이의 눈길은 사랑으로 가득하고, 한 손을 들어 어미의 볼을 만지는 새끼 원숭이는 귀엽고 앙증맞기 짝이 없습니다. 자식 사랑에 사람과 동물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보는 사람의 가슴을 찡하게 해주는 명품이지요.

원숭이는 새끼 사랑이 대단합니다. 또 영리하고 재주와 지혜가 많아 원하는 바를 잘 이룬다고 합니다. 게다가 원숭이를 뜻하는 한자 후(후)는 제후의 후(侯)와 발음이 같습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원숭이를 지혜와 벼슬 출세의 상징, 부모자식 사랑의 상징으로 여겼던 겁니다. 고려 사람들이 원숭이 모양으로 연적을 만들어 사용한 것도 이런 까닭이었겠지요. 이 연적을 만들었던 고려 도공, 이 연적을 사용했던 고려 사람들의 마음이 1000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도 전해오는 것 같지 않나요? 보면 볼수록 기분 좋은 고려청자입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