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총선 야당 압승]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미얀마 제1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지지자들은 9일 아침 일찍부터 승리가 점쳐진다는 소식이 흘러나오자 당사(黨舍)로 몰려들어 환호했다. 당사 일대는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도 9일 성명을 내고 “수십 년간 미얀마 국민이 보여준 용기와 희생이 결실을 맺었다”고 밝혔다.
○ 축제 분위기 미얀마
AFP통신에 따르면 지지자들은 옛 수도 양곤의 NLD 당사 앞에 모여 수지 여사의 이름을 연호하는 등 승리를 확신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최종 개표 결과가 나오려면 15일은 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미얀마 국민들은 이번 총선이 진정한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라며 낙관하는 목소리가 높다.
엔지니어 감독관을 하다가 은퇴를 했다는 조 윈 씨(67)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얀마 군부가 처음 쿠데타를 일으켰던 1962년에 나는 고등학생이었다”며 “주변에서 투표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긴 했지만 내가 던진 한 표가 세상을 바꾸는 데 한몫할 것이라는 생각에 NLD 후보를 찍었고 결과는 정말 감격스럽다”고 했다. 부모 남동생 3명과 함께 투표장을 찾은 텟 나잉 씨(23)는 “우리 가족은 모두 수지 여사의 열렬한 지지자들이다. 여사가 이긴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27년간의 민주화 운동 ‘가시밭길’ 끝에 총선 승리를 이끌 것으로 유력시되는 수지 여사는 9일 오후 당사 발코니에 나와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우리 후보들을 축하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내가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은 모두 결과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승리를 언급했다.
아직 최종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해서인지 여사는 “패한 후보는 승리한 후보를 인정해야 하지만 패한 후보를 자극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며 지지자들에게 “각자 집으로 돌아가 결과를 기다려 달라. 결과가 나오면 차분하게 이를 받아들이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 수지 ‘지도자 꿈’ 성큼
미얀마 선관위는 당초 9일 오전 9시에 투표 결과 집계 1차 발표를 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오후 4시, 6시로 발표를 계속 미뤘다. 미얀마 현지에선 집권당과 군부가 어떤 방식으로 선거 패배를 수습하고 이후 정국을 운용할지에 대한 정치 협상 시나리오를 짜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흘러나왔다.
최종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만약 NLD 측 주장대로 선출직 의석 491석의 70% 이상을 얻는다면 단독 집권이 가능하고 군부 지배도 막을 내리게 된다. NLD는 이번 총선에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해 필요한 상하원 과반수 의석 확보를 내심 목표로 세웠다. 그 마지노선이 선출직 의석 중 67% 확보였다. 애초 군부가 25%를 자동으로 가져가는 현 시스템에서 67% 의석 확보는 ‘불가능한 희망’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뚜껑을 열어 보니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그만큼 미얀마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염원이 컸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 “대통령 위의 존재가 되겠다”
미얀마 대선은 간접선거다. 상원과 하원 그리고 군부가 각자 후보를 내고, 이 중 한 사람을 의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하기 때문에 의회 과반수 확보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NLD가 과반 확보에 성공한다 해도 수지 여사 말고 다른 대통령 후보를 내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수지 여사는 5일 자택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내가 직접 대통령이 되지는 못하지만 막후에서 대통령 이상으로 권력을 휘두르며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겠다”며 “내가 대통령 위의 존재가 돼선 안 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만약 여사의 행동이 현실화될 경우 법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편 KOTRA는 9일 NLD가 집권에 성공하면 경제 개혁 개방에 가속이 붙어 국내 기업의 진출 여건이 개선될 것이라며 그동안 선거로 인해 지연돼 온 각종 경제입법들이 시행되며 우리 기업의 진출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설 snow@donga.com·이유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