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는 한국경제, 뛰는 선진경제]한국기업 ‘저성장의 늪’ 왜?
현재 성적표는 엇갈린다. 미국 일본 독일 인도 등 주요국 기업들이 금융위기 충격에서 벗어나 힘차게 성장하고 있지만 한국 기업은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다. 왜일까.
○ ‘기술 집약’과 ‘중후장대’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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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위원에 따르면 정보기술(IT), 제약, 미디어, 금융 등 4대 기술집약 기업들은 전 세계 기업 매출의 22%를 차지하지만 영업이익은 46%를 차지한다. 조금 팔아 많이 벌 수 있는 ‘알짜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이 같은 기술집약 기업들의 비율이 높지만 한국은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등 ‘중후장대’한 기업이 많다. 실제 한국의 50대 기업 중 4대 기술집약 기업은 삼성SDS, SK텔레콤 등 9개에 그쳤다. 하지만 미국은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22개, 일본과 독일은 각각 12개였다.
누가 게임의 ‘판’을 만들어 가는지도 눈여겨봐야 한다. 구글은 모바일 시장에서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구축했고, 공유경제의 대명사인 에어비앤비는 개인의 빈방을 판매하는 새로운 판을 만들었다. 이미 판이 짜인 상황에서 후발로 참여해봐야 누릴 수 있는 과실은 크지 않다. 장 위원은 “미국이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 때 한국은 플랫폼 위에 올려놓는 반도체 부품 등을 만들었다. 하지만 플랫폼을 주도하는 게 훨씬 수익이 높다”고 지적했다.
○ 모래주머니 달고 뛰는 한국 기업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유병규 지원단장은 “국내 제조업의 생산비용이 너무 높다”며 “특히 자동차 산업의 노동비용은 일본, 독일에 비해 월등히 높다. 한국의 다른 분야도 노동비용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한국 기업의 성장을 막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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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오 호샤 한국GM 사장은 올해 9월 ‘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바라본 한국의 노동시장’ 특별좌담회에서 “최근 5년간 인건비 상승률이 50%를 넘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내가 미국 GM 이사회에 가서 ‘한국에 더 많은 투자를 하자’고 건의할 수가 있겠나”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각종 정부 규제도 한국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노동시장 규제는 기업의 경제적 자유를 악화시키기 때문에 한국 제조기업의 성장성을 떨어뜨린다”며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선 노동 유연성을 높이고 규제를 없애는 정부 부문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반대로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통해 기업이 성장한 사례는 일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 기업의 매출액 증가는 2012년까지만 해도 한국 기업과 비슷했지만 2013년부터 급격히 뛴다. 그 시기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본격적으로 ‘아베노믹스’를 펼치기 시작한 때와 같다. 아베 정부는 시장에 돈을 풀어 엔화 약세 유도, 산업경쟁력강화법을 통한 사업재편 지원, 각종 규제 철폐를 이끌었다.
○ 해법은 장기적 체질 개선과 지식산업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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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근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기업 구조조정에 찬성하는 뜻을 밝혔다. 이어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늦어지면 금융권이 부실해지고, 이는 실물 산업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수봉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도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 일본 독일 기업의 선전에는 ‘정책의 성공’도 큰 역할을 했다”며 “정부가 나서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고 대규모 인프라 투자나 경기를 부양하는 통화정책을 통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도 기술집약 산업을 키울 수 있도록 지식기반자본(KBC)에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장석인 위원은 “미국 일본 독일 기업들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고수익을 올린 것에는 비즈니스 모델뿐 아니라 새로운 투자를 많이 했다는 공통점도 있다”며 “특히 연구개발(R&D), 데이터, 소프트웨어, 경영 노하우 등 KBC에 활발한 투자를 했다”고 분석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