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병 환자들/브라이언 딜런 지음·이문희 옮김/380쪽·1만8000원·작가정신
불가능에 가까운 기술적 주문을 해대는 이 저명한 연주자를 직원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수석 조율사 윌리엄 후퍼가 그의 곁을 지나치며 왼쪽 어깨를 두드리는 순간, 굴드가 몸을 움찔하며 말했다.
“만지지 말아요. 싫어요.”
다음 해 8월 헨리 스타인웨이 사장과 굴드가 뉴욕 한 호텔 방에서 독대했다. 그리고 굴드가 쓴 치료비와 소송 비용 9372달러 35센트를 지불하고 소송을 취하하기로 합의했다. 스타인웨이는 곧바로 전 직원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지극한 정중함으로 굴드를 다시 맞이하되, 이유와 상황을 막론하고 그 어떤 신체 접촉도 감행하지 말라.”
이 책의 저자는 미국 예술계간지 ‘캐비닛’의 영국지부 편집장이다. 그는 굴드, 앤디 워홀, 마르셀 프루스트, 샬럿 브론테 등 천재 아홉 명의 삶에서 심기증(心氣症·건강염려증)의 흔적을 발췌해 엮어냈다. 그들에게 심기증은 예술가 또는 사상가로서의 삶 자체, 혹은 열정적인 생산 시기를 구축한 매개 조건이었다.
굴드는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에도 “기침하는 청중 때문에 괴롭다. 세균들로부터 내 몸을 보호하기 쉽지 않다”고 불평하기 바빴다. 이에 대해 저자는 “굴드의 기행은 요동치는 세상과 자신 사이에 놓은 완충장치였다. 유약함과 혼란을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육체적 존재로서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어 자신의 고독과 심기증 자체를 연주하려 한 것”이라고 썼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