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농부 박인호의 전원생활 가이드]전원생활 터, 단풍 떨어진 겨울에 보라

입력 | 2015-10-14 03:00:00


도시민들이 10월에만 개방되는 강원 홍천군 내면의 은행나무숲을 찾아 산책을 즐기고 있다. 박인호 씨 제공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지난주 8일은 절기상 한로(寒露)였다. 이슬이 찬 공기를 만나 서리로 변하기 직전이다. 이즈음 농촌의 들판은 황금물결로 넘실거리고, 산은 오색단풍이 더욱 짙어진다. 귀농·귀촌에 관심이 많거나 준비 중인 도시인들이 단풍 구경을 겸해 인생2막의 터를 찾아 나서는 시기이기도 하다.

필자가 살고 있는 강원 홍천군에는 오지 중 오지로 꼽히는 내면이라는 곳이 있다. 평균 해발 650m에 이르는 고랭지로 채소와 산채를 주로 재배한다. 특히 ‘가을의 정원’으로 불리는 4만여 m² 규모의 은행나무숲(광원리)은 매년 10월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된다. 전원생활 터를 찾고자 한다면 인근의 명개리와 ‘홍천9경’ 중 하나인 살둔계곡(율전리) 일대를 함께 둘러보길 권한다.

순백의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이색적인 숲길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강원 인제군 인제읍 원대리에는 하얀 자작나무숲이 있다. 왕복 6km의 숲길을 산책하면서 오감으로 자연과 소통하는 곳이다. 내린천을 사이에 두고 원대리와 마주보고 있는 하추리 일대도 귀촌지로 관심을 가질 만하다.

10월은 단풍의 계절이자 수확의 계절이다. 그만큼 먹을거리와 체험거리도 풍부하다. 가족과 함께 체험과 휴양을 즐기며 주변의 전원생활 터도 답사해보자.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내 체험휴양마을 가운데 가평군 상면 행현2리에 위치한 아침고요푸른마을이 있다. 축령산과 아침고요수목원이 가깝다. 행현1리, 임초리, 덕현리 등 주변 마을까지 넓혀 인연의 땅을 찾아볼 수 있다.

오가는 길에 가을바다를 보고 싶다면 동해안 쪽으로 가보자. 해발 700m 이상에 위치한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마을은 주변의 고산식물과 소나무숲 등이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양양군 서면 서림리의 황룡마을 또한 청정함과 풍광이 남다른 곳. 주변에 공사 중인 홍천∼양양 고속도로의 나들목(IC)이 개통되면 수도권 접근성이 크게 개선된다.

장래 귀농·귀촌지를 선택할 때 선배들의 조언만큼 귀중한 팁도 없다. 충북 보은군 마로면 기대리 선애빌은 2010년 귀농·귀촌한 30여 가구로 구성된 공동체 마을이다. 이곳은 자연과 사람이 교감하는 친환경적인 삶과 대안문화를 추구한다. 공동체 마을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올 7월 시행에 들어간 ‘귀농어·귀촌 지원법’에는 공동체 마을에 대한 지원 근거가 마련되어 있다.

가을의 황금들녘은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배가 부르다. 경북 상주시 경천대는 낙동강 1300리길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절경이다. 매년 가을이면 강 건너 중동면 회상리 들녘이 금빛으로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과 예천군 용궁면 회룡포마을, 강원 홍천군 남면 남노일리마을 등도 가을 강과 들녘이 어우러진 풍광이 일품이다. 주변에서 귀농·귀촌지를 물색해볼 만하다.

가을단풍 구경길에 둘러볼 만한 인생2막 터가 어디 이뿐이겠는가. 전국 곳곳에 이런 곳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가을단풍에 취해 한눈에 반한 터가 있다 하더라도 바로 계약을 하는 등 성급하게 결정하는 것은 금물이다. 가을단풍 명소 주변은 이미 펜션이나 음식점, 숙박시설 등이 대거 들어서 있어 호젓한 전원생활을 즐기기에는 되레 부적합한 곳도 많다. 차라리 조금 떨어져 있더라도 수시로 찾아가 즐길 수 있는 곳을 택하는 것이 좋다.

전원생활 터는 ‘전원’보다 ‘생활’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주말에만 이용하는 세컨드하우스가 아니라면 365일 가족이 함께하는 삶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원생활 터는 ‘보기 좋은’ 땅이 아니라 ‘살기 좋은’ 땅을 골라야 한다. 가을단풍에 홀딱 반해 향과 입지, 자연재해, 이웃관계, 시골생활 인프라 등을 고려하지 않고 덥석 땅부터 매입하게 되면, 나중에 집을 짓고 살면서 “아이고!” 하고 후회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시골 땅은 낙엽이 다 떨어진 겨울에 보라’는 격언도 있다. 화려했던 단풍이 지면 그 터의 민낯과 생활의 불편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법이다.

인생2막의 길은 1막과는 달리 잘못 들어서면 되돌리기가 너무나도 버겁다. 그래서 애초 시행착오를 최소화해야 한다. 만약 보기 좋은 터와 살기 좋은 터를 놓고 갈림길에 서게 된다면 당연히 후자를 택하는 것이 상책이다. 전원생활은 단풍 구경과는 너무나 다르기에.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