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이름-거주지 등 안지운채… 목격자 진술조서 金에 제공 방어권 보장 위해 열람 허용하지만… 신상 보호규정 없어 보복범죄 노출
‘트렁크 살인 사건’ 피의자 김일곤(48)이 자신이 처벌받은 사건 목격자의 진술조서를 법원에서 복사해 인적사항을 파악한 뒤 ‘살생부’를 작성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검찰에 따르면 김일곤은 지난달 9일 충남 아산시 대형 마트 지하주차장에서 주모 씨(35·여)를 납치해 노래방 도우미로 가장시켜 유인하려 했던 노래방 주인 A 씨와 얽힌 사건 목격자 3명의 진술조서에서 개인 신상정보를 빼내 복수를 다짐했다. 김일곤은 5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A 씨의 승용차와 끼어들기 문제로 시비가 붙어 A 씨를 폭행한 혐의로 약식 기소돼 벌금 50만 원에 처해졌는데, 이 과정에서 A 씨뿐 아니라 폭행 과정을 진술한 목격자 3명에게도 원한을 품은 것이다.
김일곤은 7월 7일 서울남부지법이 벌금 50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리자 이틀 뒤 법원에서 목격자 3명의 진술조서 등 기록을 복사해 살생부에 이들의 이름을 올렸다. 진술조서에는 진술자의 이름, 나이, 직업, 주소, 연락처 등 개인 신상정보가 담겨 있다. 김일곤은 폭행 사건 담당 경찰관과 1998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절도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한 재판장 등 총 28명의 이름을 적은 살생부를 작성했다.
대법원은 판결이 확정된 사건 관련 기록의 열람 및 복사에 대해선 개인정보 보호 규칙을 두고 있지만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해선 별도의 개인정보 보호 규칙이 없다. 이 때문에 일선 법원에선 피의자에게 사건 기록을 복사해 줄 때 사건 관련자의 인적사항을 완벽히 지우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검찰청 강력부(부장 변찬우 검사장)는 피의자가 재판 중인 사건 관련 기록을 복사할 때 피해자, 목격자 등 상대방 개인정보를 의무적으로 보호하도록 관련 법규 개정을 추진 중이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