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자 “총구10개 기관총이 증거”
청나라 치원함이 1894년 9월 17일 일본 함대와의 전투에서 침몰되기 전까지 서해를 누비던 당시의 모습. 동아일보DB
이 함선은 발견 당시 선체 대부분은 수 m의 두꺼운 진흙층 속에 묻혀 있었고, 현장에서는 주포, 탄약, 포탄, 총구 10개가 있는 기관총 등이 나왔다. 고고학자들은 “이런 기관총은 당시 치원함에만 설치됐다”고 설명했다.
일부 고고학자는 “치원함 갑판이 커다란 돌덩어리로 눌려 있었다”며 “일본군이 중국 풍수를 훼손할 목적으로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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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81m, 배수량 2300t의 장갑순양함인 치원함은 최고속력 18노트의 증기기관과 210mm 주포 5문 등을 장착하고 있었다. 청나라는 해군력을 강화하기 위해 1885년부터 1887년 사이 영국에서 2000∼7000t급의 최신예 대형 장갑군함 7척을 사들였다. 이런 군함들을 거느린 북양함대는 당시 아시아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수병들의 사기 저하와 훈련 부족, 부패로 인한 불량 포탄 공급 등으로 일본 함대와의 전투에서 주력 전함 5척이 줄줄이 격침됐다. 청나라는 이처럼 해전에서 연패한 뒤 일본에 백기를 들었다.
중국은 1996년 국가문물국 산하에 황해해전 침몰 군함 인양사업 추진 기구를 설치하고 침몰된 함정의 위치를 추적해왔다. 중국 정부가 1985년 산둥(山東) 성에 세운 ‘갑오전쟁박물관’ 내부에는 ‘갑오(청일)전쟁 패전이라는 굴욕적인 역사는 낙후되면 곧 당하게 된다는 도리를 다시 입증하였다’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친필을 새긴 동판이 붙어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