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공화 대선주자 2차 TV토론회
‘트럼프는 주춤했고, 피오리나는 급상승했다.’
16일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 2차 토론회 성적은 이렇게 요약된다. 이날 오후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시미밸리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기념 도서관에서 열린 토론회는 지지율을 기준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포함된 메이저 주자 11명과 린지 그레이엄 등 군소 주자 4명으로 각각 나뉘어 진행됐다.
3시간 넘게 진행된 토론회의 중심은 지지율 1위로 앞서 나가는 트럼프였다. 나머지 주자 10명이 트럼프를 집중 공격해 트럼프는 ‘1 대 10’의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 예봉을 요리조리 피하려고 애썼지만 외교 등 주요 정책에서 빈약한 지식과 식견을 드러내 ‘트럼프 돌풍’의 한계를 스스로 보여줬다. 반면 칼리 피오리나 전 HP 최고경영자는 트럼프를 상대로 ‘싸움닭’ 기질을 발휘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트럼프는 지난달 6일 폭스뉴스가 주최한 1차 공화당 토론회만큼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날 토론회가 트럼프의 ‘얼굴 비하 발언’ 등 정쟁 이슈 외에도 이민개혁, 동성결혼, 러시아 및 중동 문제 등 트럼프가 다소 취약한 정책 이슈 중심으로 진행됐기 때문. 트럼프는 러시아에 대해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대화할 수 있다”며 일반론을 폈고, 자신이 불을 지핀 불법 이민자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벽을 세우겠다”는 기존 주장 외에 별다른 게 없었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김정은을 겨냥해 “북한의 미치광이가 거의 2주마다 미국을 향해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협박하고 있다”며 역시 기존 주장을 반복했다.
반면 피오리나는 날 선 메시지와 순발력으로 토론회를 장악했다. 트럼프의 ‘얼굴 비하 발언’에 대해선 “트럼프가 한 말을 미국 모든 여성은 분명히 들었을 것”이라며 트럼프의 얼굴을 굳게 만들었다. 트럼프는 이에 “피오리나의 얼굴은 아름답다”며 사실상 사과했다. 또 피오리나는 자신을 포함해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 ‘워싱턴 아웃사이더’들이 대선 레이스에서 선전하는 데 대해 “워싱턴 내부에서 고장 난 시스템을 고치지 못하니까 외부에 관심이 쏠리게 된 것”이라고 똑 부러지게 대답해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트럼프 돌풍에 치이고 있는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이번 토론회에서도 반전의 계기를 잡지 못했다. 부시는 트럼프가 “나는 이라크전에 반대했다. 당신 형(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잘못해서 버락 오바마 정권이 탄생했다”고 공격하자 “형 때문에 그나마 우리가 안전하게 지내는 것”이라고 맞받아친 게 거의 유일하게 박수를 받은 장면이었다. 트럼프에 이어 지지율 2위를 유지해 온 벤 카슨 전 신경외과 의사도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
CNN은 토론회 후 “최대 승자는 피오리나, 패자는 트럼프”라며 “트럼프가 특유의 에너지를 발휘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번 토론회도 사실상 ‘트럼프 토론회’로 진행된 만큼 트럼프의 독주에 당장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