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초 서울가정법원은 이례적으로 두 차례나 혼외 부정행위를 저지른 유책배우자 이모 씨(54)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였다. 이 씨는 1980년 결혼한 조모 씨(52·여)와의 사이에서 이미 자녀 둘을 낳았지만 오랜 시간 부부사이가 원만치 못했다.
이 씨는 골프연습장에서 알게 된 여성과 동거하다 직장과 다니던 교회에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4년 만에 관계를 정리했고, 조 씨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2년 뒤 또다시 같은 아파트 부녀회장과 내연관계를 맺었고, 아예 집을 나와 인근 오피스텔에 거주하며 조 씨를 상대로 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10여 차례 각종 손해배상 소송과 간통죄, 무고 혐의 등 형사고소전이 난무했다.
결국 서울가정법원 가사5부(부장판사 배인구)는 “10년 가까이 별거하고 있고 계속 법적 분쟁을 벌여온 점 등을 고려할 때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갈등이 악화돼 부부간의 신뢰와 혼인생활이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며 이혼하라고 선고했다. 대법원이 고수해온 유책주의와는 달리 혼인 관계 파탄을 인정해 내린 판결이었다. 올해 6월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가사1부(부장판사 김용석)도 재산분할 비율만 조정했을 뿐 1심의 판결을 그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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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세종의 이홍철 가사전문변호사는 “하급심 판사들은 앞으로 고민이 많아질 것”이라며 “이번 판결로 책임비율이 애매모호한 실제 사건들을 운용하는 데 있어, 종전보다 융통성 있고 파탄주의에 가깝게 전향적으로 판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혼 사건을 다수 변론해 온 배금자 변호사는 “유책 배우자의 상대가 이혼을 청구했음에도 고령이라는 이유로, 병수발해 줄 이가 없으니 계속 해서 참고 살라는 오래된 판례를 근거로 기각당하는 사례가 많다”며 “유책 배우자의 행복추구권뿐 아니라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 배우자들의 청구도 세심히 고려하도록 일관된 법원의 입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