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노동자, 광고판 점거 고공시위에… 연봉 2000만원대 운영사 광고중단 타격 기아자동차 사내 하청 근로자 2명이 6월 11일부터 국가인권위원회가 입주한 서울 중구의 한 빌딩 옥상 광고판에 올라 정규직 전환을 주장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11일 바람에 날려 찢어진 현수막 뒤로 점거 근로자들이 손전등을 흔들고 있다(위쪽). 이 광고판을 관리하는 명보애드넷은 빌딩 출입구에 근로자들의 농성을 비판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건물 입구에 걸려 있는 현수막 내용이다. 현수막의 주인은 이 건물 옥상에 설치된 10m 높이의 광고판을 운영하는 광고업체 ‘명보애드넷’. 평소에는 환하게 빛을 내며 광고를 내보내는 전광판이지만 현재는 완전히 꺼져 있다. 6월 11일부터 지금까지 전국금속노조 기아차지부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 소속 비정규직인 최정명(45) 한규협 씨(41)가 정규직화를 주장하며 광고판 위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고공 농성의 발단은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아차 사내 하청업체 근로자가 기아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불복 의사를 밝히며 항소했다. 사안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근로자들은 고공 농성을 선택했다.
노사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농성이 길어지자 엉뚱하게도 광고판 관리 업체가 피해를 보고 있다. 명보애드넷의 연간 매출은 약 58억 원(2014년 기준). 인권위 건물에 있는 광고판은 매출의 10% 이상(연간 6억9000만 원)을 차지한다. 급기야 농성 중인 근로자들과 광고업체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명보애드넷은 6월 법원에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이후 고공 농성이 마무리되면 손해배상 소송도 진행할 방침이다. 현수막을 내건 이유도 마찬가지. 회사 관계자는 “기아차, 노조 측을 면담한 결과 근로자의 실질 연봉(수당 포함)은 5000만∼6000만 원대로 알려졌다”며 “평균 연봉 2000만 원대의 작은 회사가 이들의 분쟁에 휘말리는 상황”이라며 날을 세웠다. 한편 노조 측은 수당을 제외할 경우 하청 업체 근로자의 월급은 200만 원대라고 밝혔다.
명보 측은 노조 관계자의 건물 출입을 막고 있다. 노조 측은 “한 달 동안 현수막을 걸지 않는 등 광고업체가 광고를 재개할 수 있도록 충분히 협조했지만 업체가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그동안 중간자 역할을 해 왔던 인권위가 다음 달 3일까지 사무실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이다. 광고업체의 거부로 그동안 인권위가 해오던 농성 근로자 도시락 배달 문제 등이 당장 불거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고공 농성 100일째인 18일을 앞두고 금속노조, 참여연대 등이 릴레이 기자회견을 하고 근로자들이 광고판에 대형 현수막을 걸겠다고 예고해 충돌이 예상된다.
권오혁 hyuk@donga.com·강홍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