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유책(有責) 배우자의 ‘축출 이혼’은 허락할 수 없다는 서울가정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15일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할 것인지를 놓고 대법원의 최종 선고가 나올 예정인 가운데 하급심이 현행 유책주의를 고수하는 판결을 내려 주목된다.
대학교에서 만난 A 씨(여)와 B 씨(남)는 1985년 혼인신고를 했다. 가정환경이 불우한 A 씨와의 결혼을 반대했던 시아버지는 A 씨가 두 자녀를 출산하자 자신의 명의로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해 아들 가족을 살게 했다. 그러나 B 씨는 시부모와의 갈등 속에 살던 A 씨를 두고 가출해 수년 뒤 다른 여성을 만나 아이 둘을 낳았다. B 씨가 가출한 사이 병에 걸린 시부모를 간병한 A 씨는 시부모에게 인정받아 생활비 일부를 받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자 B 씨는 가출 22년 만에 A 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냈다. 아버지 사망 후에는 상속권을 행사해 A 씨와 아이들이 살고 있는 아버지 명의의 아파트를 자신과 동생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하고 경매에 넘겼다. 아버지가 A 씨에게 사준 아버지 명의의 오래된 자동차까지 견인해갔다.
B 씨는 선진국에서도 유책행위와 별개로 혼인관계가 파탄나면 이혼을 인정하는 파탄주의 추세에 있다며 별거한 사정을 고려해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B 씨의 태도로 미뤄볼 때 이혼 청구가 인용되면 A 씨는 대책 없이 ‘축출 이혼’을 당해 참기 어려운 경제적 곤궁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며 “A 씨와 자녀들이 정신적·사회적·경제적으로 가혹한 상태에 놓여 이혼청구 인용은 사회정의에 반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