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한국 초연 40주년을 맞은 연극 ‘에쿠우스’는 극단 실험극장의 전설 같은 작품이다. 40년간 매번 무대에 올릴 때마다 흥행하며 ‘작품의 힘’을 증명했다. 무엇보다 ‘에쿠우스’는 스타의 산실이었다.
주인공 알런은 남자 배우라면 한번쯤 탐내는 역이다. 알런에 캐스팅됐다는 것은 곧 ‘연기파 배우’라는 인증이기도 했다. 1975년 국내 초연 이후 고(故) 강태기·송승환·최민식·최재성·조재현·김영민·정태우·류덕환 등 연기파 청춘스타들이 알런 역을 꿰찼다. 국내뿐만 아니다. 2008년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에쿠우스’에는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스타덤에 오른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알런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2015년,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알런 역을 꿰찬 두 배우(더블캐스팅)는 남윤호(31)와 서영주(17)이다. 실험극장 이한승 대표가 알런 역의 배우를 확정짓기까지 무려 6개월이 걸렸다는 후문이다.
“혹시나 아버지 덕을 본다는 이야길 들을까봐 2012년 데뷔 때부터 이름도 바꾸고 철저히 비밀로 했어요. 페리클레스 프레스콜 때에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유인촌 선생님’이라고 부를 정도였죠. 공연이 올라간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언론을 통해 다 알려졌고…. 지금은 오히려 홀가분해요. 누구의 덕이 아닌 제 실력으로 인정받을 일만 남았죠.”
남윤호와 함께 더블캐스팅된 서영주는 역대 최연소 알런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길거리 캐스팅으로 배우가 된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영화 ‘범죄소년’에서 소년수를 연기해 도쿄국제영화제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뫼비우스’에선 배우 조재현을 아들로 나와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그는 “오디션을 볼 때만 해도 지원자 대부분이 20~30대 형들이라 부담이 됐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극중 알런이 19세인만큼 ‘내가 10대인데 뭘. 자신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면 돼’라는 마음으로 맹연습 중”이라며 웃었다.
남윤호는 “영주는 그냥 무대에 서 있기만 해도 알런 그 자체”라며 칭찬했다.
‘에쿠우스’는 말 일곱 마리의 눈을 찌른 광기 어린 소년 알런과 그를 치료하게 된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의 밀고 당기는 팽팽한 대결과 긴장이 핵심인 심리극이다. 알런은 한 장면 안에서도 여러 감정의 변화를 나타내는 만큼 섬세한 연기력을 필요로 한다. 게다가 마구간에서 여자친구와 벌이는 전라의 정사신도 있어 ‘노출연기’에 대한 부담도 있다.
지난 4일 에쿠우스 첫 공연 날, 객석에서 남윤호의 알런 연기를 본 서영주는 “형은 늘 연습 때도 매일매일 성장하는 알런을 연기했다”며 “연습 때 역시 100% 안 보여줬던 것 같다. 본 공연에서 더 큰 에너지가 느껴졌다”며 웃었다. 에쿠우스는 11월 1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전석 4만 원, 02-889-3561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