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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장 옆에 이봉창 의사 순국 터가…

입력 | 2015-08-27 03:00:00

[2030 순례단, 항일독립운동 현장을 가다]<上>방치된 日 사적지
열사들 순국한 형무소 터… 주택가 놀이터에 덩그러니
때로 얼룩진 비문 읽을 수도 없어… 2·8독립선언 장소는 아직 확인 못해
日정부 정보 비공개에 자료 조작까지




24일 일본 도쿄 신주쿠 ‘이치가야 형무소’ 옛 터의 위령탑 앞에서 순례단원들이 이봉창 의사를 비롯해 이곳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며 묵념하고 있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가 세계사에 미친 영향력이 무색하게도 위령탑은 주택가 쓰레기 분리배출장 옆에 외로이 놓여 있었다. 도쿄=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24일 일본 도쿄(東京) 신주쿠(新宿) 구의 한적한 주택가 놀이터. 쓰레기 분리수거장과 하수구로 둘러싸인 곳에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때가 잔뜩 낀 검은 비석이 서 있다.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숨진 형사자(刑死者) 위령탑.’ 1932년 히로히토(裕仁) 일왕을 겨냥해 수류탄을 던졌던 이봉창 의사를 비롯해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순국의 장소다. 이봉창 의사(1901∼1932)의 투탄 의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일왕궁 사쿠라다몬(櫻田門)에서 5km가량 떨어진 곳이다. 하지만 위령탑 옆에는 쓰레기 분리수거장이 있었고, 비석 앞에는 말라비틀어진 과일만 놓여 있어 마치 무연고자의 묘지처럼 황량하기만 했다.

○ 방치된 재일 독립운동 사적지들

광복7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와 국가보훈처, 동아일보사가 주최한 ‘2030세대 독립과 미래창조 순례’에 참가한 순례단원들은 24, 25일 이봉창 의사의 순국 터를 비롯해 도쿄 곳곳의 항일 독립운동 사적지를 찾았다. 대부분 그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에 비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일부는 실제 발생지의 정확한 위치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었다.

이봉창 의사의 투탄 의거는 조선인의 항일 투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세계에 각인시킨 주요 사건이었지만 현재는 정확한 투탄 의거지가 일왕궁 사쿠라다몬과 경시청 중 어느 곳이었는지조차 학설이 분분하다. 순례단 이혜린 씨(20·여·이화여대 경영학과 2학년)는 위령탑 앞에서 묵념한 뒤 주변을 청소하면서 “일본이 식민지배에 항거한 독립운동가에 대한 예우까진 기대하지 않았지만 최소한의 반성도 않는 태도를 드러내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1919년 3·1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2·8독립선언의 사적지도 형편은 비슷했다. 독립선언문이 작성된 옛 재일본 한국YMCA 건물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재일 유학생들이 두 차례 독립선언을 외치려다가 경찰에 붙잡혀 좌절됐던 장소도 히비야(日比谷) 공원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순례단은 어쩔 수 없이 독립선언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과 새로 지어진 YMCA 건물 옥상에 있는 기념관을 방문한 뒤 발길을 돌려야 했다. 순례단을 이끈 오영섭 연세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여기까지가 국내 연구진이 자체 노력으로 밝힐 수 있는 한계이고, 정확한 진상 파악을 위해선 일본 정부의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항일 독립운동의 사적지가 정확한 위치조차 파악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의거 장소는 일제가 조작해 발표했다는 연구 결과마저 있지만 아직도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

○ 후손들에 의해 간신히 명맥 유지

25일 일본 도쿄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본부를 찾은 순례단이 학도의용군 출신 이봉남 씨와 독립유공자 후손 정해룡 씨, 재일 학도의용군 부회장 유재만 씨(앉아 있는 사람 왼쪽부터)에게 감사 편지를 건넨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도쿄=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이튿날인 25일 찾은 도쿄 한복판의 야스쿠니(靖國)신사는 독립운동 사적지와 딴판이었다. 평일 낮인데도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 종전 70년’이라는 현수막이 붙은 입구에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대동아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을 ‘아시아 해방전쟁’으로 해석하는 일본 우익의 시각이 담긴 표현이다. 게시판에는 1945년 한 일본군이 숨지기 전 가족에게 사랑한다며 보낸 편지가 큼지막하게 전시돼 있었다. 수많은 전쟁 피해자를 만든 데 대한 반성보다는 전쟁의 정당성과 그로 인한 일본의 피해를 부각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순례단은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에서 활동하는 독립유공자 후손 정해룡 씨(81)와 재일 학도의용군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이봉남 씨(96)를 만나 광복 전후 재일 한국인들의 생활상을 전해 들었다. 정 씨의 부친은 1923년 도쿄에서 항일결사 ‘흑우회’를 조직했다가 옥고를 치른 고 정찬진 선생이다. 정 씨에게는 아버지 품에서 살포시 잠들었다가 한밤에 깨어나 보면 조직 활동을 위해 나가시고 없던 어린 시절의 아련한 기억이 있다.

정 씨를 비롯한 재일 한국인들은 한국YMCA 앞에 2·8독립선언 기념비를 세워 당시 정신을 기리고 있다. 순례단 임제준 수경(22·제주해경)은 정 씨와 이 씨에게 편지를 전달하며 “일본 내 독립운동 사적지가 이만큼이라도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한 재일 한국인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도쿄=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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