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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최고의 의술]102세 대장암 2기 할머니 복강경 수술…

입력 | 2015-08-24 03:00:00

초고령층 환자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김준기 대장항문외과 교수




김준기 서울성모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노인들의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복강경 수술 기술도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더 많은 초고령층 환자들이 암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아무리 베테랑 외과의사라도 100세 넘는 환자를 대상으로 암 수술을 한다는 건 쉽지 않죠. 외과의사 생활 중 가장 보람이 깊었던 일입니다.”

김준기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64)는 2011년 12월 15일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당시 102세로 대장암 2기 상태였던 고 문귀춘 할머니(2014년 사망)의 복강경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기 때문이다.

100세 넘는 암 환자에 대한 수술은 세계적으로도 거의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우다. 통상 의료계에서는 70, 80대 환자의 경우에도 암 등 중증질환에 대한 수술 진행을 신중히 결정한다. 심폐 능력과 면역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수술 도중은 물론이고 회복 뒤에도 적지 않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문 할머니의 경우 고혈압이 있었지만, 특별히 건강에 문제가 없었고 평소 정신도 또렷해 ‘개복 수술은 힘들어도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복강경 수술은 진행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 수술을 결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준기 서울성모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가 단일공 복강경을 이용해 대장암 환자의 수술을 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자신감 있게 시도한 수술이었지만 문 할머니에 대한 수술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배에 0.5∼1.2cm 크기의 구멍을 낸 뒤 투관침을 넣어 종양을 절제하는 방식인 복강경 수술은 통상 3시간 정도면 끝난다. 그러나 문 할머니의 경우 50여 년 전 앓았던 충수돌기염(맹장염)으로 인해 소장과 결장의 유착이 심한 편이었다. 이로 인해 투관침이 종양이 있는 곳까지 도달하기가 어려웠던 것. 김 교수는 “수술을 시작한 직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은 물론이고 ‘복강경 수술은 일단 중단하고 개복 수술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까지 했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하지만 김 교수는 당시 환자의 마취 상태에 문제가 없었고, 연령대를 감안할 때 개복 수술은 신체 부담이 크고 감염 우려도 있다고 판단해 복강경 수술을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그는 “그동안 진행했던 3000건이 넘는 대장암 관련 복강경 수술 중 가장 섬세하게 손을 움직였던 수술이었다”며 “총 6시간이 걸린 수술 중 종양 위치까지 도달하는 데만 약 3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수술 뒤 김 교수의 예상처럼 문 할머니는 특별한 부작용 없이 건강하게 회복돼 105세까지 살았다.

김 교수는 “개복 수술에 비해 수술 상처 부위가 적고, 심폐 기능에 부담을 덜 주는 복강경 수술을 활용하면 더 많은 초고령층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란 확신도 더욱 강해졌다”며 “의학의 발전 못지않게 노인들이 건강관리에 철저해지고 있다는 점도 초고령층 환자들에 대한 수술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1994년부터 복강경 수술을 해 온 김 교수는 최근 복강경 수술 기법의 해외 전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004년부터 주로 태국 의사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복강경 수술 노하우 전수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다음 달에는 일본 의사들을 대상으로 현지에서 복강경 수술 노하우 전수 교육도 진행할 계획이다.

김 교수는 “수술 장면을 녹화해 해외 학술대회에서 보여주면 곳곳에서 탄성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앞으로 해외 환자들도 적극적으로 유치해 복강경 수술을 중심으로 한 한국 의료 수준을 더욱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