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의 북베트남군에게 ‘구정 공세’가 있었다면, 아내에겐 ‘연휴 해외여행 공세’가 있다. 남편은 악전고투 끝에 백기 투항하고 말았다.
외국여행의 들뜬 기분도 잠깐이었다. 아내는 온갖 군데를 들러야 한다며 의욕을 불태웠고, 무거운 짐에 힘든 남편은 입이 댓 발 나왔다. 아내가 남편의 시큰둥한 태도에 발끈해 화를 내며 다툼이 벌어졌다.
한데 연애할 때는 귀여운 고양이 같던 아내가 왜 결혼한 뒤로는 호시탐탐 트집을 잡고 화를 내는 것인지. 남편은 그런 아내로부터 한 발짝씩 물러나다가 야근과 약속으로 피신한 지 오래다.
생각해 보면, 집이 좀 안됐다. 비싼 전세금을 깔고 앉은 집인데 ‘들어가기 싫고, 있기 싫은 집’ 대접이나 받고 있다. 언제부터 집이 휴식 공간이 아니라, 피하고만 싶은 전쟁터처럼 되어버린 것일까. 하지만 집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아내가 처음 맛본 현지 요리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표정이 풀렸다. “나중에 은퇴하고 나면 우리, 여기 다시 오자.”
그러나 일본 의사 이시쿠라 후미노부는 “그런 계획, 반대일세”란다. 이시쿠라 박사는 저서 ‘난 가끔 집에 가기 싫다’에서 “특히 정년 후에는 아내와 둘만의 여행은 꿈도 꾸지 말라”고 조언한다. 서로 다른 남녀의 스타일에 노년 특유의 고집까지 합쳐져 큰 다툼이 벌어질 수 있으니 차라리 단체여행에 합류하라는 것이다. 여행도 쇼핑과 비슷해서, 여성이 여유롭게 즐기는 걸 좋아하는 반면 남성은 목적이 없으면 행동하지 않는다.
여성은 대화를 통해 자신이 상대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확인하려 한다. 이야기야말로 그들의 알파요, 오메가다.
소외당하는 집부터 바꿔 놓으면 언제든 여행을 함께 떠나도 즐겁지 않을까 싶다. 기대만 걸지 않고 털어놓는 솔직함과 갈등을 회피하지 않는 용기가 ‘어서 들어가고 싶은 편한 집’의 기본 정서다.
한상복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