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광풍’ ‘샌더스 돌풍’ 원인은?
“야, 트럼프다!”
15일 오후 미국 아이오와 주 디모인 시의 주 박람회장 상공에 공화당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전용 헬기를 탄 채 모습을 보이자 많은 사람들이 올려다보며 이렇게 환호했다.
아이오와는 내년 2월쯤 미국에서 가장 먼저 코커스(당원대회)가 열려 ‘대선 풍향계’로 불리는 만큼 후보들에게는 ‘유세 필수 코스’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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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주위로 몰리자 트럼프는 “내 곁에 모인 사람이 힐러리보다 10배쯤 더 많다”고 떠벌렸다. 샌더스 의원이 박람회 한쪽 연단에서 정치개혁을 역설하자 1000여 명의 관중이 몰려들어 박수를 쳤다.
이날 디모인 시의 현장은 미 정치의 뿌리인 공화 민주 양당 체제의 이방인인 비주류 아웃사이더 후보인 두 사람의 인기가 새삼 확인된 자리였다. 가장 최근인 12일 여론조사에서도 두 사람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트럼프는 CNN이 아이오와 주 공화당 성향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23%로 1위를 차지하며 벤 카슨 전 신경외과 의사(14%),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9%), 젭 부시(5%) 를 여유 있게 제쳤다.
트럼프 광풍에는 못 미치지만 샌더스 돌풍도 점차 거세지고 있다. 샌더스는 12일 보스턴헤럴드가 실시한 뉴햄프셔 주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유권자 중 44%의 지지를 얻어 37%의 클린턴 전 장관을 제치는 이변을 연출했다.
15일 기자가 방문한 워싱턴 인근 레스턴 지역의 한 ‘파머스 마켓’(농산물 직거래 장터)에서도 샌더스 돌풍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샌더스 지지자들은 자원봉사자로 나서 유권자들의 서명을 받고 있었다. 내년 3월 버지니아 주 민주당 대선 경선(프라이머리)에 나서기 위해선 주 유권자 1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조직이 아니라 자원봉사자들이 맡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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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샌더스 같은 ‘워싱턴 이방인’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기성 정치에 실망한 미국의 유권자들이 급속히 무소속화되어 가고 있으며 기성 정치에 대한 심각한 경고음을 발신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퓨리서치센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현재 미국인 중 자신이 무소속이라고 밝힌 비율은 39%였고 민주당은 32%, 공화당은 23%였다. 39%는 1950년대 이후 가장 높은 무소속 비율이다.
미국민들은 왜 기성 정치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일까. 우선 중산층 경제가 여전히 침체인 것과 닿아 있다. 트럼프가 중국, 인도와의 통상 마찰을 감수하면서라도 일자리 창출에 나서겠다며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외치는 구호가 먹히는 것도 백인 중산층의 심리를 꿰뚫은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는 분석했다.
또 샌더스 의원은 2월 브루킹스재단 세미나에서 현재 미국 사회를 ‘억만장자에 의한, 억만장자를 위한, 억만장자의 사회’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샌더스 모두 ‘워싱턴의 때’가 덜 묻었다는 이유로 일종의 ‘묻지 마 지지’ 현상이 벌어지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최후의 승자가 될지는 아직 섣부른 판단이다. 비판만 난무할 뿐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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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