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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王, 기회마다 日전쟁 참회 ‘평화 아이콘’… 아베 간접 압박

입력 | 2015-08-17 03:00:00

[광복 70년/아베 담화 이후]전몰자 추도식서 ‘깊은 반성’ 언급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전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부친 히로히토(裕仁·1926∼1989) 일왕과 달리 과거사와 관련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 발표 날짜를 당초 15일에서 14일로 하루 앞당긴 것도 일왕의 평화 메시지와 어긋날 것을 우려한 궁내청이 간접 경로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일본의 진보세력 사이에서는 아키히토 일왕이 ‘평화주의자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을 정도이다.

1989년 즉위 이후 줄곧 일본이 과거 침략전쟁을 망각하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해온 아키히토 일왕은 특히 아베 총리가 취임한 2012년 12월 이후부터는 발언 강도가 더 잦아지고 세졌다. 2013년 12월 팔순 기자회견에서는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소중한 것으로 삼아 일본국 헌법을 만들었다”며 아베 총리의 평화헌법 개정에 반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해 평화헌법 개정에 강한 의욕을 보이자 지난해 12월 만 81세 생일 인터뷰에서는 “일본이 평화국가의 길을 계속 걸어가길 바란다”고 했다. 패전 70년인 올 1월 1일 신년 소감에선 더 나아가 “만주사변으로 시작한 전쟁의 역사를 충분히 배우고 앞으로 일본의 존재 방식을 생각하는 것이 지금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당시 일본의 대표적인 침략 사례인 ‘만주사변’을 거론한 사실은 특히 주목받았다.

올 4월 태평양전쟁 격전지였던 팔라우를 방문하기에 앞서 하네다 공항에서 열린 출발 행사 때에는 아베 총리가 앞에 서 있는 데도 미일 양국의 팔라우 전투 전사자 수를 거론하면서 “태평양에 떠 있는 아름다운 섬들에서 이런 슬픈 역사가 있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1990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 방일 만찬에서는 “우리나라로 말미암은 불행한 시기에 귀국 여러분이 고통을 맛본 걸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길이 없다”고 하는 등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에 대한 각별한 감정을 표현해 왔다.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앞두고 있던 2001년 12월에는 “간무(桓武·737∼806)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는 사실에 한국과의 깊은 인연을 느낀다”고 말해 일왕가의 피 속에 백제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2007년에는 도쿄의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사망한 이수현 씨를 소재로 만든 영화 시사회에도 참석했었다.

이처럼 아키히토 일왕이 일본 우익들과는 판연히 다른 역사 인식 행보를 보이는 것은 자신이 직접 겪은 전쟁 체험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1945년 일본 패전 후 피란지에서 돌아온 그는 도쿄 아키하바라 역에서 불에 탄 폐허들을 돌아보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패전 후에는 아동 문학자였던 미국인 가정교사 엘리자베스 바이닝 부인에게서 민주주의 교육을 받았다. 사생활 면에서도 메이지시대 이후 일본 왕실에서는 처음으로 평민 여성과 연애 결혼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현행 일본 헌법은 일왕의 정치 관여를 일절 금지하고 있다. 명분상으로 일왕의 행보나 발언에 아베 총리가 구애받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상징 천황’이라고는 하나 총리와 중·참의원 의장, 최고재판소(대법원) 장관 등 3권 수장은 일왕에게서 임명장을 받는다. 해외로 가는 대사들도 마찬가지다. 일본으로 부임하는 외국 대사들은 일왕의 신임장을 받고 있다.

서울 삼청동 주한 일본대사관저 응접실에는 총리 사진이 아니라 일왕 부부의 사진이 걸려있다. 일본 여권 표지에는 왕실 문양인 국화가 새겨져 있다. 해외 국빈이 방문해 마주 보고 대접할 때는 일왕 등 왕실 인사가 가운데에 앉고 끝자리로 밀려난 일본 총리의 파트너는 상대국 차관급이 되기도 한다.

일본 한 정부 당국자는 “사회 상층부로 갈수록 일왕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며 “그런 일왕이 계속 평화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패전 70년을 맞아 15일 아리무라 하루코(有村治子) 여성활약담당상,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무상, 야마타니 에리코(山谷えり子) 국가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담당상 등 현직 장관 3명과 여야 국회의원 66명은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아베 총리는 참배는 하지 않았지만 아침 일찍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총재특보를 시켜 공물을 개인 돈으로 보냈다. 그는 또 하기우다 특보를 통해 “영령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야스쿠니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다”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 전몰자(戰沒者) ::

일본의 아시아태평양 침략전쟁 때 목숨을 잃은 군인 군속 약 230만 명과 미국의 공습 등으로 목숨을 잃은 민간인 약 80만 명 등 총 310만 명을 말한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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