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 방안을 담은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국민을 향해 “간곡히 협조를 부탁드린다”는 말을 5번에 걸쳐 반복했다. 노동 공공 교육 금융 4대 개혁이 절실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의 적극적 동참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절박한 상황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됐는지 의문이다.
어제 담화에서 박 대통령은 메르스 사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정부의 초기 방역 실패를 이유로 보건복지부 장관을 경질했다면 대통령도 당연히 사과의 뜻을 밝혔어야 한다. 우리의 경제 사정은 세계적으로 유독 좋지 않은 편이다. 이로 인한 청년 실업과 민생고에 대해서도 먼저 송구한 마음을 밝히는 게 도리였다.
박 대통령이 가장 먼저 언급한 노동개혁의 경우 올해 4월 노사정위원회가 결렬된 이후 중단된 상태다. 4대 개혁은 지난해 12월 처음 제시됐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시 “내년에는 핵심 분야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 체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손에 잡히는 성과는 없다.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와 여당 지도부와의 회동에서 노동개혁을 ‘지시’한 적은 있었으나 달리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공공개혁과 관련해 박 대통령은 공무원연금법 개정을 성과로 내세웠으나 연금 지급으로 인해 발생하는 국가 부채는 여전히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어 있다. ‘맹탕 개혁’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또 그는 “공공기관의 부채 감축과 방만 경영을 개선해 공공부문 전체 수지가 7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고 자랑했으나 실제로는 경영 합리화보다는 공공기관이 보유한 알짜 부동산과 해외 자산 매각을 통해 달성한 흑자다. 박 대통령이 과연 현실을 알고 있는지, 보고를 제대로 받고 있는지 궁금하다.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는 노동개혁 방안을 내놓기 전에 정부 부처 예산의 40% 축소, 공무원 10만 명 감축, 공무원 임금 상승률의 연간 1% 이내 동결을 약속했다. 브라질은 정부 조직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 이런 자기희생은 찾아보기 어렵다. ‘낙하산 인사’ 관행을 그대로 둔 채 공공부문을 개혁한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담화 발표가 나온 어제도 한국관광공사 신임 사장에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일했던 인사가 내정됐다.
담화 가운데 실직 근로자를 위해 실업급여의 수준과 지급기간을 확대하는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에 신경 쓴 것은 평가할 만하다. 박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 법안’으로 거론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비롯해 일부 법안들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고 있는 것은 야당 책임이 크다. 그러나 야당을 타박만 할 게 아니라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야당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박 대통령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G20 국가성장전략 중 1위로 평가받고 있다고 내세웠다. 경제혁신의 설계도는 제대로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껏 그 설계도대로 어떤 것이 이뤄졌는지 국민은 알지 못한다. 공무원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규제 개혁의 실적이 미진하고 기업들의 체감도가 낮은 측면이 크다. 공직사회를 쇄신하겠다며 인사혁신처까지 신설했으나 아직 가시적 변화는 없다.
청와대 측은 담화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출입기자들에게 일부 질의응답 기회를 주는 방안을 한때 검토했다가 취소했다. 국민들이 갖고 있는 궁금증에 대해 박 대통령이 질문을 받고 성심성의껏 설명했다면 의미 있는 소통의 장이 될 수 있었다. 일방적인 ‘담화문 발표’는 박 대통령의 소통 부족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이를 해결 못하는 대통령 참모들의 수준도 실망스럽다. 대통령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서 남들에게 변하라고 한다면 누가 공감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