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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규제 놔둔채… “푼다, 풀었다” 외치지만 체감도 싸늘

입력 | 2015-07-28 03:00:00

[박근혜노믹스 ‘마지막 골든타임’]<下> 성장 막는 癌, 규제 혁파하자




#1 서울에서 식품 용기 도·소매업을 하고 있는 A사는 최근 폴리염화비닐(PVC) 제품을 중국에 수출했다가 현지 고객의 불만 때문에 모두 국내로 반입했다. 수출 대금조차 받지 못한 반송품이지만 부가가치세 10%를 세관에 내야 했다. 관세법은 수출 재화가 고객 불만으로 반송됐을 때 상품을 재수입하는 것으로 여겨 부가가치세를 매기고 있다. 이 회사 사장은 “나중에 부가가치세를 환급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종업원 2명에 매출액이 1억 원 정도밖에 안되는데 몇 달간 돈이 묶여 있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2
서울 압구정동의 B백화점은 건물 증축 계획만 세우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백화점이 역사문화미관지구에 포함돼 있어 건물 높이를 4층(서울시 심의를 통과하면 6층까지 가능)까지로 제한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담당자는 “역사문화미관지구는 인근에 문화재가 있을 때뿐 아니라 경관을 보호할 필요가 있을 때도 지정된다. 압구정로가 역사문화미관지구로 지정돼 있어 인근 건물은 높이 제한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백화점 측은 “경관 보호라는 잣대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며 답답해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손톱 밑 가시’란 유행어가 생길 정도로 규제 개혁에 강력히 나서고 있지만 정작 기업들은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동아일보가 기업인 및 경제 전문가 50명에게 ‘투자와 고용을 늘리기 위한 환경 조건’(복수 응답)을 물었을 때 ‘핵심 규제 철폐’(33.7%)를 가장 많이 꼽았을 정도다.

○ 무늬만 규제 개혁

새 정부가 출범하면 예외 없이 규제 개혁을 외쳤다. 규제는 기업 성장의 암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그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드라이브를 걸었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12월 말 현재 1만5265건이던 등록 규제(중앙 부처가 법령으로 규정하고 있는 규제)를 임기 내 2009년 수준(1만2867건)으로 20% 줄이겠다고 밝혔다.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신설했고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할 정도로 힘을 싣고 있다.

하지만 기업인들은 규제 개혁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올해 3월 560개 기업을 대상으로 ‘지난해 규제 개혁 성과에 대한 만족도’를 물은 결과 29.8%가 불만족이라고 밝혔다. 만족은 7.8%에 그쳤고 보통은 62.4%였다. 규제 개혁 체감도(100이 기준, 그 이하면 불만족)도 현 정부가 들어선 2013년 92.2, 지난해 89.8로 기준치를 밑돌았다.

이혁우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선포하듯 규제 개혁을 외쳤지만 수도권 규제, 서비스업 규제와 같은 핵심 규제를 이야기조차 꺼내지 못했기 때문에 기업인들이 규제 개혁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쪽에선 규제를 철폐하지만 다른 쪽에선 새로운 규제가 지속적으로 생기는 점도 문제다. 27일 현재 규제정보포털에 게시된 등록 규제는 1만4688건으로 2013년 12월과 비교해 겨우 577건(3.8%) 줄었을 뿐이다.

○ 규제 생산장 ‘국회’

법을 고쳐 규제를 없애려면 결국 국회가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국회야말로 규제를 폭발적으로 생산하는 주체다. 전경련에 따르면 18대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규제와 관련해 발의한 법률안은 2923건으로 정부 제출안 349건보다 약 8배나 많다.

물론 난개발을 막는 좋은 규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의원 입법은 국가의 정책 목표에 대한 고려 없이 국회의원 개개인의 독자적 판단에 따라 입안되기 때문에 정교함이 떨어진다. 재계에서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 유해물질 관리에 관한 법률(화관법) 등을 문제점 많은 의원 입법으로 꼽는다.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은 ‘의원 발의 법률안에 대해서도 정부 제출 법률안과 비슷하게 규제에 대한 영향평가와 심사를 사전에 실시하자’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2013년 9월에 발의하기도 했다.

경제 활성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기만 하면 발목이 잡힌다는 것도 문제다. SK플래닛은 자회사인 SK커뮤니케이션즈(SK컴즈) 매각 여부를 10월까지 결정해야 한다. 지주회사의 손자회사는 증손회사 지분 100%를 확보해야만 한다는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때문이다.

지주사인 SK㈜의 구조는 SK㈜→SK텔레콤→SK플래닛→SK컴즈로 이어진다. 손자회사인 SK플래닛은 증손회사인 SK컴즈 지분(64.54%)을 100%로 확대하거나 전량 매각해야 한다. 경제 5단체의 한 임원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수차례 국회에 올라갔지만 ‘대기업 특혜 아니냐’는 한마디에 무산되고 만다. ‘지주회사’가 ‘저주회사’인 상태”라고 말했다.

○ 국회도 바뀌고, 반기업 정서도 바뀌어야

먼저 국회가 바뀌어야 한다. 김태윤 한양대 교수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국회가 공격적으로 투자 활성화, 고용 창출 방안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근로자, 중소기업 보호 명목으로 온갖 새로운 규제를 양산한다”며 “국회의원들이 생각의 전환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규제는 잡초와 같아서 꾸준히 뽑아 줘야 한다”며 “규제를 1∼3그룹으로 분류해 1그룹에 해당하는 문제는 빨리 방법을 찾아 주고 2, 3그룹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다뤄 주는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규제 개혁의 우선순위를 정해 기업들이 원하는 규제부터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해법으로는 ‘규제 개혁=대기업 도와주기’라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김진국 배재대 교수는 “대통령이 나서서 ‘기업이 성장해야 국민 소득도 올라가고 일자리도 늘어난다’는 대원칙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나서 반기업 정서를 바로잡고 규제를 줄여 준다면 기업이 분명 투자와 고용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