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대외 정벌/임홍빈 유재성 서인한 지음/464쪽·1만9800원·알마
왜구의 침략을 그린 16세기 명나라 그림. 왜구는 한반도와 중국 해안에 출몰해 약탈을 일삼았고, 조선은 급기야 대마도 정벌을 단행했다. 알마 제공
자, 여기 등장하는 적군은 누굴까. 역사에 해박한 독자가 아니라면 인근의 다른 경쟁 부족이나 명나라 관군을 떠올리기 십상일 것이다. 그러나 당시 철저한 토벌을 감행한 주체는 조선 관군이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외세에 당하기만 한 문약(文弱)한 이미지의 바로 그 조선이다. 임진왜란 이후 북방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진 틈을 타 여진족이 끊임없이 약탈을 자행하자 본거지 소탕에 나선 것이다.
이 책은 대마도나 여진족 토벌처럼 조선왕조 500년에서 극히 드물었던 해외 정벌을 집중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독특한 내용에 걸맞게 저자들은 모두 국방부에서 근무한 군사(軍史) 편찬 전문가들이다. 그래선지 해외 정벌의 역사적 배경은 물론이고 군대의 움직임과 전법 등이 폭넓게 다뤄져 흥미롭게 읽힌다.
조선은 고려 말부터 준동한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 여진족을 토벌하고 그 유명한 4군 6진을 개척해 영토로 편입시켰다. 관직과 곡식으로 회유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했지만 여진족의 약탈이 극심해지면 근거지에 대한 토벌 작전에 나서는 식이었다. 문제는 부족 단위로 산발적으로 공격하는 여진족의 게릴라전 패턴 때문에 한 번의 대규모 군사작전으로 이들을 무력화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 강조한 대외 정벌이 결국 절반의 성공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지적한다.
조선 위정자들의 어처구니없는 현실 인식이 결정적인 한계로 작용했다. 소중화(小中華) 사상에 젖어 여진족과 왜구를 오랑캐라며 깔보고 제대로 대처하지 않다가 온갖 수모를 당하기 일쑤였다. 예컨대 1419년 5월 13일 왜구가 불과 8일 만에 장소를 옮겨 황해도 해주 연평곶이를 공격했지만 방비에 소홀했던 조선 수군은 이내 포위를 당하고 만다. 조전절제사 이사검은 왜구에 아전을 딸려 보내 쌀 5섬과 술 10단지를 주고 퇴각할 것을 읍소했다. 정규군이 아닌 도적 떼에 불과했던 왜구에게 한 나라의 정규군이 뇌물을 바친 셈이다.
가장 압권은 승냥이 떼 운운하며 경멸한 여진족의 청나라에 패해 1637년 인조가 ‘3배 9고두례’의 노예 의식을 치른 ‘삼전도의 굴욕’이었다. 한 번 절을 올릴 때마다 머리를 세 번씩 땅바닥에 부딪치는 이 의식에 인조의 이마는 피투성이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