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기 걸친 서구의 발전 궤적 반세기 만에 따라잡은 한국 목표가 사라지자 방황 또 한번의 도약과 생존 위해 다시 세계로 눈 돌려야 한국에서 희망 찾는 빈곤국 그들을 산업화 길로 이끄는 공동번영의 새 항해 시작하자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국인의 열망과 의지가 압축성취를 만들어 낸 배경에는 따라잡을 상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유수의 산업 강국이 되었고, 선거에 의해 다른 이념 지향 간의 피 흘리지 않는 정권교체를 만들어 냈고, 원조 공여국이 된 대한민국은 더이상 따라잡을 상대가 없어졌다. 대신, 자신과의 싸움이 남아있다. 압축성장의 그늘이라는.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가던 압축성장의 도도한 물결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고용 없는 성장’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성장의 햇볕을 받는 쪽과 그러지 못하는 쪽의 빛과 그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성장의 햇살이 그늘을 없애주던 시대는 가고, 그늘 쪽에 있는 사람들을 햇볕 쪽으로 나오게 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2011년 말, 대한민국은 무역 1조 달러를 처음으로 달성했지만, 국민적 흥분은 없었다. 가진 것이라곤 인력자원밖에 없는 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무역의 기념비적인 1조 달러 달성이라는 역사적 사건이었는데 말이다. 자부심은 있었지만, 감동은 없었다. 모두를 비추던 햇볕의 시대는 끝났기 때문이다.
한국을 여기까지 끌고 왔던 고속질주가 사라진 후, 한국은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고 있다. 한반도의 긴장과 갈등은 여전하고, 세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14억 인구의 중국은 한국의 제조업을 위협하는 자리까지 바싹 추격해 왔고, ‘잃어버린 20년’에서 다시 돌아온 일본은 중국과의 대립구도 속에서 자신의 미래 행보를 가늠해 보고 있다. 전통적 동맹국인 미국은 한국이 점점 중국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한국이 자신의 영향권 아래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를 둘러싼 한국, 미국, 중국 간의 갈등은 시작에 불과하다. 지정학적 구도의 풍랑은 한국을 휘감고 있고, 21세기 생존과 번영을 모색해야 하는 한국은 더이상 방황할 여유가 없다. 다시 세계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제대로 된 빈곤 퇴치를 위해 한국이 가는 길은 더 적극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한다. 그들과 같이 그물을 엮으면서 같이 물고기를 잡아 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의 산업화, 민주화 세대의 자산과 더 큰 세상,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청년들의 열망이 같이하고, 세계시장 경영으로 능력을 다진 대기업과 탄탄한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이 같이한다면, 빈곤 국가들의 산업화를 같이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빈곤 탈출의 새 역사가 한국과 같이하게 되는 세계사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셈이다.
더이상 따라잡을 상대가 없어진 한국호, 이젠 그간의 방황을 끝낼 때다. 다시 눈을 세계로 돌려라. 블루오션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새로운 항해의 역사가 시작된다. 65년 전 오늘, 지금의 대한민국을 상상조차 못했듯이 그 항해는 더 눈부신 세계로 이어지리라.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