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시장 청년 상인 12人의 ‘日시장 탐방기’
일본 가나가와 현 가와사키 시의 긴류카이 상점가에서 5대째 영업 중인 기모노 가게의 점장(왼쪽)이 한국 청년상인탐방단에 가게의 역사와 상품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가와사키=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라면집에 들어갔는데 벽면에 라면에 들어가는 재료들의 포장지가 하나씩 붙어 있었어요. 이렇게 신뢰를 얻는구나 하고 깨달았죠. 그 바탕에는 ‘나는 이런 재료를 쓴다’는 자신감이 있겠죠. 저도 반찬가게를 하고 있는데 돌아가면 실천하려고요.”-김태응 씨(36·서울 신영시장 반찬가게 운영).
한국에서 온 청년 상인들의 눈빛은 수차례 반짝였다. 일본의 시장과 상점에서, 그리고 라면을 먹으러 들어간 작은 식당에서도 그랬다. 이들은 신세계그룹과 중소기업청,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진행하는 ‘청년상인 및 가업승계 아카데미’에서 선발된 12명이다.
○ 기본을 지키는 상인들
열정 넘치는 청년상인들이 꽤나 답답해했던 순간이 있었다. 3일 차, 도쿄 남쪽 가나가와 현 가와사키 시의 ‘긴류카이 상점가’를 찾을 때였다. 이곳은 가나가와 현에서 매출 규모가 가장 큰 상점가다. 1949년 상인들이 조합을 만든 후 공동 발전 전략을 펼쳐왔다. 1990년대 들어 인근에 대형 쇼핑몰이 잇달아 들어섰지만 밀리지 않았다. 아웃렛과 대형마트가 생길 때마다 휘청거리는 전통시장 상황을 알고 있는 한국 청년상인들은 ‘특별한 비결’을 듣고 싶어 했다. 하지만 고지마 데루히코 조합 이사장의 입에서 나온 비결은 경품 행사, 시즌별 마케팅 등 평범했다. 모두 한국 전통시장들도 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청년상인들의 답답함은 점포를 돌아보며 풀렸다. 그들이 찾은 정답은 ‘상인들의 몸에 밴 친절과 배려’, 그리고 모든 상품에 가격을 표시하는 것 같은 ‘기본’이었다.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정다정 씨(28·여)는 “상인들에게서 진심이 느껴졌다. 한국 백화점 점원에게서 느끼는 가식, 시장 상인에게서 본 ‘삶에 찌든 표정’과는 다른 것이었다”고 말했다. 쌀 포장지 뒷면에는 ‘2명이 30일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란 설명과 함께 조리법이 나와 있었다. 쌀가게를 운영하는 주진 씨(25)는 “손님에게 뭐가 필요한지 고민하는 모습을 배웠다”고 했다.
○ 협력하며 진화하는 상인들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발전 방안을 찾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긴류카이 상점가 조합은 1994년 비가 오면 지붕을 닫는 개폐식 아케이드를 설치했다. 이 아케이드는 정부 지원이 아닌 상인들의 조합비로 만들어졌다.
가와사키 시의 브레멘도오리상점가는 1990년 유럽의 중세 도시를 테마로 한 상점가를 만들기로 했다. 이듬해 브레멘음악대로 유명한 독일의 브레멘 시로부터 이름을 사용하는 허가를 받았다. 이후 브레멘을 테마로 다양한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거리 곳곳에는 브레멘을 상징하는 동물들의 동상이 배치됐다. 브레멘에서 쓰이는 방식으로 만든 맥주도 판매한다. 상인들은 직접 브레멘음악대를 조직해 정기 공연을 펼친다. 상점가를 찾은 사람은 이전보다 3배로 늘었다. 창업 준비 중인 신보람 씨(26)는 “우리 전통시장들도 상인들이 힘을 모아 독창적인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달았다”고 말했다.
도쿄·가와사키=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