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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아주 오래된 생명체들, ‘소멸’을 본다

입력 | 2015-06-20 03:00:00

◇위대한 생존-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 이야기/레이첼 서스만 지음/
김승진 옮김·300쪽/2만5000원·윌북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식물 ‘야레타’(위 사진). 2000년 넘게 자라온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림포포 주에 서 있는 추정 수령 2000년의 글렌코 바오바브나무. 윌북 제공

“수명 긴 생물은 ‘영원’이라는 거짓 감각을 믿게 만든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변하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채 현실의 일상에 쉽게 파묻혀 버린다. 하지만 오래 살았다고 해서 불멸은 아니다.”

미국 플로리다 주 세미놀 카운티 빅트리 공원에 약 3500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섰던 사이프러스 나무 한 그루가 2012년 1월 16일 갑작스러운 불상사로 인해 ‘사망’했다. 필로폰에 취해 나무 밑동 널찍한 틈새로 숨어들어 간 20대 청년들이 불을 낸 것. 화염은 일주일간 타올랐다.

저자는 뉴욕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예술가다. 그는 이 ‘사이프러스 나무 화형식’에서 보듯 인간 사회가 발생시킨 지구상의 변수가 수천, 수만 년을 살아온 나무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언급하는 위협적 변수는 사막에 새로 들어선 군부대, 기후 온난화 등이다. 그는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주관하는 기후변화 리더 양성 프로그램을 이수했다고 밝혔다.

본문보다는 책머리에 붙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디렉터)의 서문을 찬찬히 곱씹게 된다. 오브리스트는 2년 전 ‘우리가 지금 마땅히 걱정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소멸”이라 답했다고 썼다.

“과학자들은 인류 문명의 소멸, 심지어 인간이라는 종 자체의 소멸 가능성도 점점 더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다. 천문학자 마틴 리스는 저서 ‘우리의 마지막 시간’에서 인류 문명이 앞으로 100년 이상 존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철학자 레이 브래시어는 철학에 대해 ‘삶의 긍정을 위한 매개체도 정당화를 위한 원료도 아닌, 소멸을 고찰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아주 오래 살아남은 생명체를 찾아다니며 소멸을 논했다는 오브리스트의 책 추천사는 아무래도 좀 과한 느낌이 있다. 지구의 골수를 야금야금 파먹어 들어가는 인간 사회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당에 죄책감의 그늘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 역시 엄연한 가해 그룹의 일원임을 망각한 지식인. 씁쓸하게 익숙하다.

책은 학업이나 교우 관계 등 주제와 무관한 사적 행적의 기록을 시시콜콜 페이스북 메모처럼 이어간다. 그런 가운데 소재가 지니고 있던 본래의 진지한 중량감이 맥없이 흩어져 버린다.

인간이 자연을 찾는 방법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훼손된 부분을 찾아내 그 잊혀진 가치를 아프게 재조명하거나, 아직 널리 드러나지 않은 아름다운 속살을 드러내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거나. 지은이의 방식은 후자에 가깝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