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尼 女작가 크리스틴 아이 추 展
크리스틴 아이 추의 아크릴화 ‘레이어(layer)와 레이어’(2010년). 판화 작업으로 시작해 차츰 조각과 설치로 도구를 변화시켜 온 흔적이 묻어 있다. 송은아트스페이스 제공
“아직 명성을 얻지 못한 젊고 실력 있는 해외 작가를 꾸준히 발굴해 지원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연이 닿은 건 문화재단을 설립한 업체가 1980년대 초 인도네시아 동부에 대규모 유연탄광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맥 빠지게 단선적인 전시 사유와 대조적으로 작품은 몽글몽글 흥미롭다. 제작 시기별로 분류해 붙여놓은 각 전시실 타이틀은 대충 흘려 넘기길 권한다. 작품 50여 점이 한결같이 전하는 것은, 체제의 공고한 압박에 순순히 따를 도리가 없는 본능적 갈망의 신음이다.
가톨릭을 믿는 가정에서 여성으로 태어난 아이 추는 인도네시아 사회의 변방 경계인이다. 그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별수 없이 감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입지다. 3개 층의 전시실에 순차적으로 나눠 정리한 작품을 훑어보면서 작가가 사회의 비주류 구성원으로서 짊어진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며 나이 들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사무치게 공감될 만큼 시리고 아픈 갈등으로 다가들지는 않는다. 심상을 작품으로 연결시킨 해법이 특출하게 섬세하다 하기도 어렵다. 눈길을 잡아끄는 드로잉이 있는 반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허술한 캔버스도 여럿 섞여 있다.
강남에 머물다 잠깐 짬을 내 이 전시를 둘러볼 까닭을 묻는다면 아마 그 불완전성에서 간신히 찾을 수 있을 거다. 이 동네 갤러리는 하나같이 노골적으로 고고하다. 기초화장부터 속눈썹 마무리까지 빈틈없이 정리한 엇비슷한 얼굴들이 줄줄이 걸려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작품을 죽 정리해 펼칠 기회를 얻었다는 이 인도네시아 작가는 ‘예쁜 얼굴’만 골라 내놓을 처지가 아니었다. 팀 버턴 감독이 젊은 시절 끼적여 인터넷에 공개했던 플래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닮은 기괴한 드로잉들. 차츰 부스러져 형태를 지우더니 말라붙은 핏빛 회화 속에 얽혀 묶인다. 그 과정을 구경하는 일이 그럭저럭 심심하지 않다.
식사 시간은 피해서 방문하는 편이 좋다. 1층 식당 주방에서 올라온 공기가 전시실 전체를 휘돌아 채운 뒤에야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 허점 역시 어찌 보면 또 재밌긴 하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