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 사회부장 jnghn@donga.com
김 총리에게 보고를 하면 아무 말 없이 지그시 눈을 감고 보고내용을 자세히 들었다고 한다. 한참 동안 설명을 다 들은 뒤에야 “그건 이렇게 합시다”라고 결론을 내려줬다. 이렇다하게 타박하는 일도 없이 경청하는 김 총리는 모시기 편한 총리였다. 당사자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판사가 최고의 판사이듯 김 총리는 ‘이 말도 맞고 그 말도 맞다’는 황희 정승 같은 총리였다.
그러나 정 총리가 취임하고 나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정 총리는 보고를 마치기도 전에 “이건 왜 이렇게 돼 있는 거냐” “무슨 근거로 이렇게 결정한 거냐”라며 면도날처럼 허점을 파고드는 질문을 던졌다. 마치 검사가 피의자 신문을 하듯이 꼼꼼하게 빈틈을 찾아내서 총리실 공무원들은 대면보고 때마다 진땀을 흘려야 했다.
첫 총리 후보자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을 지명했고, 김 전 소장이 낙마하자 정홍원 총리를 내세웠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로 정 총리가 사임했을 때는 ‘국민검사’ 안대희 전 대법관을 후임으로 발탁했으나 자진사퇴로 허사가 됐다. 여기에다 총리직을 고사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법조계 총리 후보들은 수두룩하다. 이번 총리 지명 때에도 박 대통령은 현직에 있는 한 고위 법조계 인사를 최적임자로 보고 의사를 타진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법조인 총리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이고 법조계에서조차 썩 긍정적이진 않다. 지나간 잘잘못을 단죄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왔다는 직업의 특성상 복잡한 국정을 이끌어가고 여야 정치권과 대화를 해나가야 하는 총리의 역할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일련의 과정을 복기해 보면 박 대통령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게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지난해 부패척결의 상징적 존재인 안 전 대법관 카드가 무산됐지만 총리실에 지시해 부패척결추진단을 만들어놓았고, 이번에 총리 후보자를 물색할 때에도 ‘안대희 같은 인물을 찾고 있다’는 말이 파다했다. 결국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하면서도 부패척결과 정치개혁을 메시지로 내놓았다.
황 후보자는 부패척결 전문가가 아니고 정치개혁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기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박 대통령의 생각은 더욱 굳어진 것 같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관피아의 부패 사슬에다, 공무원연금 개혁 추진 과정에서 보여준 정치권의 무능에 박 대통령은 적당한 화합보다는 확실한 척결 쪽에 마음을 둔 듯하다. 이미 검찰에는 청와대에서 온갖 비리 첩보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오고 있다는 말도 들려온다.
김정훈 사회부장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