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정책사회부 기자
스쳐 지나면서 ‘어이쿠’ 싶었다. 아빠는 모전교 바로 옆에 있는 나무 이름 표지판을 그냥 지나친 모양이다. 청계천 양옆으로 만개한 꽃을 뒤집어쓴 채 서 있는 건 이팝나무다. 멀찍이 보면 활짝 핀 꽃들이 수북이 쌓인 이밥(입쌀로 지은 밥)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밥나무로 불리다 이팝나무가 됐다는 설이 있다. 이팝나무 꽃이 피는 모습을 보고 그해 벼농사의 풍흉을 알 수 있다 해서 오래전 조상들이 신성하게 떠받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필자가 시골내기라 그런지 몰라도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에서 놀다 소나기가 내리면 비를 잠시 피할 수 있게 해 준 아름드리나무는 팽나무였고, 교정 앞에 나란히 줄지어 앉은 건 둥근향나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반공 어린이’ 이승복 동상 옆에 서 있던 건 상수리나무로 기억한다.
소설가 박완서 씨(1931∼2011)가 1980년대 중반에 낸 산문집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왜 (시골 아이들이) 수세식 변기의 사용법을 모르는 것만 못난이가 되고 도시 아이가 토끼풀과 괭이밥도 구별 못하는 건 못난이가 안 되나요? 어째서 어려서부터 문명의 이기를 길들이기에 익숙한 것만 잘난 것이고, 자연의 이치에 통달한 건 잘난 게 못 되나요?”
풀이름 좀 모른다고 해서 못났다고까지 몰아붙일 생각은 없다. 나무 이름 몇 개 안다고 잘났다고 할 것도 없다. 도시나 시골이나 경계 없는 인터넷에 빠져 살기 때문인지 요즘은 시골 아이들도 도시 아이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몰라도 된다. 하지만 알면 더 좋을 것 같아 하는 얘기다. 한 나절만 지나면 뒤바뀌고 달라지는, 쓰잘머리 없는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줄줄 꿰는 것보다야 집 앞의 꽃, 나무 이름 하나 더 아는 내 아이가 훨씬 더 근사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오는 주말, 어린 자녀들과 함께 나들이를 계획하고 있는 부모라면 식물도감 한 권쯤 손에 들고 나서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