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한국외교/新 실용의 길]<下>국내외 전문가 5대 제언
① 敵과 손잡은 키신저처럼… 안보협력엔 감정 배제해야
한일 과거사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 외교가 보다 이성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인권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때로는 인권 탄압국과도 손을 잡았다”며 “국익만을 생각하는 철저한 현실주의적 외교가 바로 실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 만큼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드라이(이성적)’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② ‘과거사 넓은 시각 접근’ 내부 공감대부터
박근혜 정부 특유의 원칙주의가 시시각각 변하는 외교 분야에는 오히려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미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부소장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년 전만 해도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이번 방미 기간 국빈급의 환대를 받은 이유는 미국인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바뀐 일본의 유연함과 순발력 덕도 있었다”며 “한국 외교도 고민해볼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사도 아키히로(佐道明廣) 주쿄(中京)대 종합정책학부 교수는 “한국인들에게 역사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은 유연성을 잃었다. 국민들이 역사를 고집하면 정부가 ‘좀 더 넓은 시야로 보자’고 설득해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반대”라며 “미국, 유럽을 대상으로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를 꺼내 드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았다”고 했다.
대북 문제에서도 새로운 접근으로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자는 지적도 많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은 “막혀 있는 남북 간 대화 통로를 ‘역사적 공조’로 뚫는 기회의 장으로 삼아보면 어떻겠느냐”며 “남북한 피해 할머니들이 공동 집회를 갖거나 양쪽이 갖고 있는 기록과 자료 교환도 추진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③ 뜬구름 외교 말고 전략과 목표 분명하게
한국 외교의 핵심 전략 목표가 두루뭉술하고 추상적이라며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많았다.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는 “대일 외교뿐만 아니라 대중, 대미 외교에서도 한국 정부가 뭘 하려고 하는 것인지 전략이 잘 안 보인다. 대북관계도 신뢰프로세스에 따라 통일준비위원회 등 조직을 만들었지만 거기서 어떤 전략이 나왔는지 아직까지는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④ 유연성 발휘하되 美-中간 균형 유지해야
외교 전략을 유연하고 구체적으로 가져가되 큰 틀의 균형은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은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서 많았다.
왕이저우(王逸舟) 베이징(北京)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부학장)은 “한국으로서는 아태지역에서 독특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라며 완전히 미일에 의존하는 형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후지핑(胡繼平) 현대국제관계연구원 일본연구소장은 “중국을 배제한 듯한 한미일 3각 동맹은 한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신중한 대응을 주문했다.
⑤ 총성없는 여론戰, 민간단체 적극 활용을
공식 외교 라인뿐 아니라 각종 민간단체를 활용하는 것도 한국 외교에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래리 닉시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아베 총리 방미 기간 워싱턴에서 사사가와평화재단 등 주요 싱크탱크가 일본 관련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자연스럽게 여론 시장에 일본 관련 이슈들이 넘쳐났다”며 “박근혜 대통령 방미를 앞두고도 한국의 주요 싱크탱크가 워싱턴에 한국의 어젠다를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