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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침략에 대한 반성 없어… 무라야마 담화 사실상 외면

입력 | 2015-04-23 03:00:00

[‘과거사 사죄’ 거부하는 아베]
반둥회의 60주년 기념식 연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반둥회의)에서 밝힌 과거사 언급은 ‘이전의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이 전부였다. 아베 총리가 전쟁에 관해 어떻게 반성할지 관심이 쏠렸으나 연설에는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식민지배’ ‘침략’ ‘사죄’ 등의 표현은 등장하지 않았다.

○ 성의 있는 사과 기대에 찬물 끼얹은 격

한국의 기대는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가 1995년 ‘전후 50주년 담화’에서 밝혔던 이런 표현들이 아베 총리의 연설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 표현들은 역대 일본 총리들의 과거사 관련 담화에서 빠지지 않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전후 60주년 담화’와 반둥회의 연설, 2010년 8월 일본의 강제병합 100년을 계기로 밝힌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 담화 등에도 모두 들어가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이 표현들을 외면했다. ‘침략’이란 표현을 언급하긴 했지만 1955년 반둥회의가 열렸을 때 발표한 10개 원칙을 말하면서 그 단어를 사용했을 뿐이었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말하지만 실질적으로 담화를 무력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아베 총리는 총리가 되기 전인 2012년 8월 산케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총리가 되면 (일본의 과거사를 반성한) 담화들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달 29일 아베 총리의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과 8월 15일 발표될 ‘전후 70주년 담화(일명 아베 담화)’에서도 과거사에 대한 핵심 표현이 담기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우리 정부 대표로 반둥회의에 참석한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사죄 표현이 없어 깊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모멘텀을 찾기도 점점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의 과거사 역주행에 대한 일본 국내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친정부 성향을 보여 온 요미우리신문조차 22일 사설에서 “일본의 침략은 잘못됐다고 인정한 데서 출발하는 역사 인식을 빼고 (전후) 70년을 총괄(정리)할 수 없다”고 밝혔다.

○ 중-일 정상회담 속 한국 소외 우려

한편 아베 총리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오후 늦게 반둥회의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관계개선 의지를 표명했다. 두 정상의 회동은 이번이 두 번째로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만난 후 5개월 만이다. 두 정상이 관계개선 의지를 밝히면서 과거사와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등으로 일본과 정상회담을 못하고 있는 한국이 외교적으로 외톨이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 주석은 “역사문제는 양국관계에서 중요한 정치적 기초의 원칙 문제”라고 못 박고 “일본이 아시아 주변국을 진지하게 대하고 역사를 바로 본다는 긍정적인 소식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일중 관계 개선을 적극 희망하고 있다”며 “(식민 지배와 침략에 대한 반성을 담은) 무라야마 담화 내의 역사 문제에 대한 인식을 여러 장소에서 인정했다. 이런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시아에 인프라 투자 수요가 많다는 것을 인식하고 중국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대해 논의하기를 원한다”고 밝혀 가입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다.

도쿄=박형준 lovesong@donga.com /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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