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관 나신걸(1461∼1524)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편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다.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안부를 그지없이 수없이 하네. 집에 가서 어머님이랑 아기랑 다 반가이 보고 가고자 하다가 장수가 혼자 (집에) 가시며 날 못 가게 하시니, 못 가서 다녀가지 못하네. 이런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꼬…. 분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울고 가네.”
편지의 주인공은 나신걸(1461~1524). 영안도(永安道·현 함경도) 경성에 군관(軍官)으로 지내던 그는 1490년 무렵 고향인 충청도 회덕에 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한글 편지에 담아 부인 맹씨에게 보냈다. 2012년 5월 대전 유성구 금고동 안정 나씨 묘역에서 발견된 이 편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다.
국립한글박물관에서 21일부터 6월 7일까지 기획특별전 ‘한글 편지, 시대를 읽다’를 연다. 이번 전시에선 각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상과 언어문화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한글편지 100여점이 전시된다. 한글 편지는 임금은 물론 노비까지 주고 받았다.
숙종이 1680년 즈음에 딸(숙종의 누이)의 집에 가 있는 어머니 명성황후에게 보낸 한글 편지다.
“올 도지는 작년에 거두어들이지 못한 것 합하여 여섯 섬을 반드시 하여야 되지. 또 흉악을 부리다가는 나도 분한 마음이 쌓인 지 오래니 큰일을 낼 것이니 알아라.”
양반 송규렴(1630~1709)이 노비 기축에게 밀린 도지(賭地·소작료)를 보내라고 경고하는 편지다.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학도병 이우근(서울 동성중)이 어머니에게 썼다가 부치지 못한 편지도 인상적이다.
이 편지는 1950년 8월 11일 포항여중 전투에서 전사한 이 군의 옷 속 수첩에서 발견됐다. 이 전투는 영화 ‘포화 속으로’(2010)의 소재가 됐다.
이밖에 추사 김정희, 선조, 효종, 현종, 정조가 쓴 한글 편지를 비롯해 현재 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하는 우즈베키스탄 박율랴 씨가 유학 시절 한국어를 가르쳐 준 타슈켄트 세종학당 교사에게 보낸 감사의 편지 등도 전시된다. 한글박물관 박준호 연구사는 “가장 오래된 한글편지부터 디지털 편지까지 옴니버스식으로 조명했다”고 설명했다.
김윤종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