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된 중국의 외교는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시절 이미 도광양회를 벗어던졌다. 중국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영토 영유권을 주장하며 주변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은 ‘잠에서 깨어난 사자’를 자처하면서 공세적 외교로 돌아선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시진핑 주석은 2013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여기에는 ‘중국이 이미 달라졌는데 왜 국제금융 질서는 중국을 인정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깔려 있다. 미국 주도의 견고한 기존 국제금융 체제에서 받은 냉대와 설움을 설욕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었다.
중국이 달러에 도전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월스트리트 제국’은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휘청거렸지만 중국은 당시 9% 이상의 성장률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했다. 2009년 후 전 주석과 저우샤오촨 런민(人民)은행장은 주요 20개국(G20) 런던 회의 등에서 국제금융 체계의 개혁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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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신청을 마감한 AIIB에는 중국도 놀랄 만큼 많은 57개국이 창설 회원국으로 참가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중남미 대양주에 걸친 조직이 된 것이다. 중국은 요즘 “미국의 시대는 끝났다”며 득의양양하고 있다. 중국은 ‘AIIB 창설 흥행’을 ‘미 금융 제국에 대한 도전’의 1단계로 보고 있다.
다음 단계는 위안화와 달러의 정면 승부이다. 현재 세계 각국의 외화보유액 중 위안화는 3%로 미 달러화 61%에 비하면 미미하다. AIIB에 미국은 불참했으나 당분간 달러화의 영향력을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AIIB의 투자와 대출 등을 어떤 통화로 할지가 관심인 가운데 중국의 한 관영 잡지는 “달러화가 가장 효율적이지만 달러화만을 쓸 수는 없다. 위안화와 달러화 등이 포함된 ‘AIIB 바스켓’이 구성될 것이다. 여기에서 위안화의 역할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중국 주도의 금융조직은 만들었으나 달러화에 비해 열세인 위안화의 현실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AIIB 운영 과정에서 위안화의 위상을 키워야 한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AIIB로 신국제 질서를 만들 욕심이 없다”고 했지만 AIIB는 이미 신국제금융 질서를 만들고 있다. 사무국이 차려질 베이징이 세계 금융의 한 축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빠르면 올해 중 이자율 자율화 등 국내 금융개혁도 가속화할 계획이다. 달러와의 결투에 대비한 금융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내부 체질 개선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달러와 위안화의 경쟁과 승부 속에서 세계 경제는 또 다른 활력을 찾을 것인가, 위기가 가속화될 것인가. AIIB의 탄생은 ‘G2 국제금융 질서’의 태동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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