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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왜 하필 부패한 대륙, 中南美 순방인가

입력 | 2015-04-19 22:30:00

부패인식지수 94위 콜롬비아…대통령 관련 비리사건 터진
페루 칠레 브라질까지

부패가 경제 주저앉혔고 무능정부가 돌부처 돌려 앉혔다

책임질 때 책임지지 않는 리더… 최고통치자로 인정 안 된다
두 번은 없다, 누구에게도




김순덕 논설실장

대통령은 지지리도 총리 복이 없다. 집권 4년도 안 돼 사회적 갈등과 시위, 참모의 뇌물 수수, 국가정보원의 민간인 사찰 등의 이유로 벌써 6명을 바꿔야 했다. 돈 때문에 수사 받는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이 수두룩해서 “정당이 돈 받고 자리 주는 프랜차이즈 본사냐” 소리를 듣는다. 대통령 선거참모까지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으니 당장 시급한 경제개혁의 원동력을 어디서 찾을지 걱정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가.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 중인 페루 얘기다. 우리나라와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이 나라를 폄훼할 생각은 맹세코 없다. 페루에 대해 TV ‘꽃보다 청춘’에서 얼핏 본 안데스 산맥밖에 아는 게 없어 외신을 찾아봤더니, 오얀타 우말라 대통령은 2일 7번째 총리를 들일 만큼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었다. 집권 3년도 안 돼 총리 후보자 5명을 지명하고(이 중 3명 낙마) 또 한 명을 지명하게 될 박 대통령은 차라리 괜찮아 보일 정도다.

그러고 보니 대통령이 왜 하필 지금 남미를 순방하고 있는지 우연치고는 너무 잔인하다. 부패 없는 북유럽 순방이라면 또 모른다. 대선 때 한몫한 친박 측근들이 검은돈과 관련된 의심을 받는 판에, 대통령이 방문하는 나라들이 부패인식지수 94위(콜롬비아), 85위(페루), 69위(브라질)라는 게 썩 유쾌하지가 않다.

그나마 대통령의 첫 방문지인 콜롬비아에선 현직 대통령 관련 부패 사건은 (아직) 없다. 나머지 세 나라는 모두 대통령과 연관된, 그러나 대통령은 몰랐다고 주장하는 초대형 부정부패 사건에 정권이 흔들리는 상황이다. 페루는 집권당과 연정한 당의 대표인 대통령 부인이 돈 세탁 의심을 받고 있고, 브라질에선 국영 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가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회장 재임 때 비자금을 만들어 집권당에 바친 사상 최대 규모의 비리 스캔들이 드러나 대통령 탄핵 요구로 들끓는다.

특히 남미의 우등생으로 평가받던 칠레(부패인식지수 21위)조차 2013년 말 재선된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이 아들 며느리의 부당대출 압력과 땅 투기 때문에 “대통령 사임”을 외치는 폭력시위로 골치를 앓는다는 건 충격적이다. 증세를 통한 대학 무상교육을 약속할 만큼 평등과 분배를 강조한 중도좌파 대통령의 도덕성에 금이 가서다.

심지어 칠레 최대의 금융재벌 펜타와 광업재벌 SQM이 여야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뿌리고 탈세 행각을 벌인 사실이 발각돼 ‘부패엔 좌우 없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부패인식지수 43위인 한국의 대통령이 이번 순방에서 우리보다 심한 나라도 많다는 위안을 얻어 올까봐 겁날 정도다.

하필 세월호 1주년을 맞은 날 출국한 대통령이 비행기로 거의 하루를 날아가 중남미의 부패 실태를 목도했다면, 교훈도 제대로 얻어 와야 한다.

첫째는 부패야말로 중남미 경제를 주저앉힌 주범이라는 사실이다. 6·25전쟁 때 우리나라를 도와줬던 콜롬비아도 기업인 열에 아홉이 “뇌물을 줘야 사업을 할 수 있다”고 믿게 되면 잘사는 나라가 될 수 없다. 관료주의와 규제, 비싼 금융비용 같은 ‘브라질 코스트’를 피하자니 뇌물과 부패가 나오는 거다.

국제투명성기구는 중남미 부패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를 식민지 역사나 문화가 아닌 ‘물러터진 법집행’으로 꼽았다. ‘코리아 코스트’도 가볍지 않다. 방위산업 비리가 이적(利敵)행위라면, 경제성장을 막는 부패는 반역행위로 다스려야 한다.

돌부처도 돌아앉게 만드는 것이 시앗과 무능정부다. 부패가 있어도 경제가 잘 돌아갔을 때, 포퓰리즘 정책으로 퍼주기를 일삼았을 때는 관대했던 중남미 사람들도 정부가 하는 일이 성에 차지 않자 무섭게 분노했다. 브라질 대통령은 마침내 한계를 인정하고 유능한 재무장관에게 시장 친화적 경제개혁을, 연립정부의 부통령에게 의회와의 소통 같은 정치를 맡겼다. 지금 우리나라엔 모두가 인정할 만큼 유능한 장관이 있는가.

2016년 지방선거까지 선거가 없어 올해를 개헌과 연금개혁 골든타임으로 잡았던 칠레 대통령은 ‘며느리 게이트’가 터졌는데도 휴가 중이라는 이유로 17일이나 침묵해 지지율이 31%까지 곤두박질했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책임을 인정해야 할 때 인정하지 않으면 최고통치자로서의 권위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두 번은 없다.

김순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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