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4일 인문학 융복합과정 시작한 건명원 수업 참관기
《 1일 오후 6시 반 서울 종로구 북촌로의 한 한옥. 지난달 4일 문을 연 건명원(建明苑·밝은 빛을 세우는 터전) 수업이 열리는 곳이다. 오정택 두양문화재단 회장 후원으로 설립된 건명원은 원장 최진석 서강대 교수(철학)를 비롯해 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등 8명이 인문학, 철학, 과학, 예술을 융·복합적으로 가르친다. 올해 초 1기 수강생 30명 모집에 지원자격 제한(만 19∼29세)에도 불구하고 900여 명이 몰려 화제가 됐다. 연말까지 매주 한 번씩 수업이 진행되며 전 과정이 무료다. 기자는 이날 ‘건명원 일일학생’ 신분으로 수업을 체험했다. 》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오른쪽)가 1일 건명원에서 1기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하고 있다. 최 교수는 이날 신화의 시대에서 인간 사유를 중심에 둔 철학의 시대로 전환한 것과 독립적 사유체제에 대해 강의하고 학생들과 토론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강의실에는 양복 차림에 ‘도덕경’을 든 남성과 스타벅스 커피, 맥북을 책상에 둔 스키니진 차림의 젊은 여성 등 다양한 학생이 모여 있었다. 이날 수업의 전체 주제는 ‘사유와 정신’. 1교시 강사인 최진석 교수가 컵을 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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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탈레스, 공자, 노자 등 동서양 철학을 넘나들며 독립적 사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의가 1시간을 넘어가자 최 교수의 말을 불쑥 자르고 질문하는 학생이 많아졌다. 오후 8시부터는 아예 책상을 마주보게 배치한 후 토론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독립적으로 터득하면 객관적인 것과 거리가 멀 텐데 어떻게 검증하나요” “건명원도 기존 것에 대한 교육이 아닌가요. 우리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죠” 등과 같은 공격적 질문이 이어졌다.
2교시가 시작된 오후 8시 반. 김대식 교수가 등장해 피아노 연주 동영상을 보여준다.
“아름답죠? 그런데 갑자기 전염병이 돌아서 전 인류가 모두 죽는다면? 피아노 선율은 공기의 압축된 파장에 불과합니다. 파장에 의미를 부여해줄 호모사피엔스가 없다면 음악도 없죠. 뇌 역시 고깃덩어리인데 어떻게 ‘의미’를 만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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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 학생들과 대화를 나눴다. 절반가량은 대학생. 나머지는 대기업 회사원, 군인, PD 등 다양했다. 건명원은 “스펙은 보지 않았다”고 했지만 영국 옥스퍼드대 졸업생, 서울대 졸업생 등 전반적으로 ‘고스펙’ 보유자가 많았다. 건명원 ‘입학’ 목적은 다 달랐다.
대기업에 다니는 최정윤 씨(29·여)는 “개인사업을 위한 통찰력을 얻고 싶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도시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사업가 강신우 씨(29)는 “도시에서 어떻게 인간다운 삶을 배양할 수 있을지 근원적 아이디어를 얻고 싶다”고 밝혔다.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오승목 씨(28)는 “동료가 사회 불공평을 ‘가속도 법칙’인 F(힘)=m(질량)a(가속도)로 설명하는 것을 보고 자극이 됐다”고 했다.
창의적 인재를 키우겠다는 건명원의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까. 아직 결론을 내긴 이르지만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남들이 이미 만든 것을 주입받는 식이 아니어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최 교수는 “건명원의 강의는 사유 능력을 키우고 싶다는 열망이 강한데 방법을 몰라 답답해하는 젊은이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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